©신용목 시집,『아무 날의 도시』2012
나는 격발되지 않았다 어느 것도 나의 관자놀이를 때리지 않았으므로
나는 폭발하지 않았다
꽁무니에 바람 구멍을 달고
달아나는 풍선
나의 방향엔 전방이 없다 멀어지는 후방이 있을 뿐
아무 구석에 쓰러져 한 때 몸이었던 것들을 바라본다
한때 화약이었던 것들을 바라본다
봄의 전방엔 방향이 없다 다가오는 허방이 있을 뿐
어느 것도 봄의 관자놀이를 때리지 않았으므로 봄이 볕의 풍선을 뒤집어쓰고 달려가고 있다
살찐 표적들이 웃고 있다
(주)문학과지성사
문학과지성 시인선 416
©신용목 시집,『아무 날의 도시』2012
9쪽
나는 그래
그렇다, 나는 할 수 있다
'격발된 봄'이 전한 모든 비극이 응원하는 중이다
의도된 결말과 의심쩍은 말들이
열심히 웃고 떠들고 있지만
봄은, 그보다 더 크게 입가를 찢으며 달아난다
그렇다, 원래 비극에서 발견한 작은 돌 하나엔
적은 눈치채지 못한,
폭발을 최후의 무기로 삼지 않는,
굳은 심지가 숨어있으니,
우리는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하지만 터지기 위해 모인 봄이 아니다.
그저 터지기 일보 직전인 상태에서
'한때 화약이었던 것들을 바라'보며
'봄의 전방'을 향해 또 위해,
열심히, 부단히, 당연히 견디는 일.
어떤 자세든 좋다. 달리는 두 다리는 놔두고
터지기 일보 직전인 날,
온 힘을 다해 유지하는 거다.
'살찐 표적들'의 웃음을 배경 소리로 삼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