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목 시집,『아무 날의 도시』2012
창밖으로 검은 재가 흩날렸다 달에 대하여
경적 소리가 달을 때리고 있었다
그림자에 대하여
어느 정오에는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었다 왜 다음 생에 입을 바지를 질질 끌고 다니냐고
그림자에 대하여 나는 그것을 개켜 넣을 수납장이 없는 사람이라고
어김없이 자정에는 발가벗고 뛰어다녔다
불을 끄고 누웠다
그리움에도 스위치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밤
신은 지옥에서 가장 잘 보인다
지옥의 거울이 가장 맑다
(주)문학과지성사
문학과지성 시인선 416
©신용목 시집,『아무 날의 도시』2012
73쪽
나는 그래
첫 줄을 고민했다.
시작할 문장을, 처음 말할 단어를 고려했다.
뭐든 시작이 반이고 시작이 끝이고 시작이, 시작이니까.
'검은 재'와 '그림자', '다음 생에 입을 바지'를 생각하다
'지옥'을 떠올리고 문득 그림자에 사로잡혔다.
이름이 없어서 그림자인가
좋은 뜻인가 나쁜 뜻인가
아 어쩌면 나는 명확하게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닐까-
마치 보여도 그만이고 보이지 않아도 그만인
내 무던한 것들을 넣는 그림자로서.
나는 그림자를 위해 엉켜진 걸까.
엉켜진 나를 위해 그림자가 '지옥의 거울'이 된 걸까.
아, '지옥의 거울'이 아니고
'가장 맑'은 긍정의 달인 건가.
고민하다 고려하다, 결국엔 또
명확하게 하고 싶지 않아,
경계 없는 '검은 재를 흩날'린다
뭐든 시작이 반이고, 시작이 끝이고, 시작이-
시작이 시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