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목 시집,『아무 날의 도시』2012
삶은 아니지만 죽음은 이해해
말할 때
목소리를 이해해, 허공은 얼마나 큰 무덤인가?
귓속에 빨려들어
둥글게 부푸는 머리처럼
말한 후,
그 뜻은 남아 삶 속에 있네
발소리가 어둠을 두드린다, 발소리는 어디에 속해 있는가? 발을 떠난 발자국과
허공을 떠난 고요 사이
어둠의 연기를 보는 머리가 동공처럼 열린다
한 남자의 퇴장과 암전,
그리고 텅 빈 무대에서
(주)문학과지성사
문학과지성 시인선 416
©신용목 시집,『아무 날의 도시』2012
39쪽
나는 그래
'오롯이 이해할 수는 없지만, 오롯이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하지만 사랑해.라고 말한다.
말하고자 한다. 그렇게 믿기로 한다.
나는 죽음을 믿는다. 삶은 믿지 않지만
사람은 믿는다. 하필이면 오늘, 사랑하는 이를 믿음 속에 담았다.
담고 나니, 남은 거라곤 내 울퉁불퉁한, 형태도 같지 못한
그리움과 외로움.
아, 이것들이 그를 대신해 허공을 채우는 건가.
사랑한다고 한 번 더 말할걸.
믿는다고, 괜찮다고, 참 좋았다고 웃어 보일 걸.
나는 내일 또 믿음을 믿어야 할지 모른다.
어쩌면 날 믿어야 할지도 몰라.
사라지듯 연기하는 말들과 허공에서
고요하게 자리를 지켜야지.
그를 사랑해서
그의 첫마디와 마지막 시선을 담는,
텅 빈 무대에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속 아들을 잃은 목사가 임종 전 마지막으로 한 설교 중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