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시선 386 ©박소란 시집,『심장에 가까운 말』2015
불현듯 슬프다
너무 오래 울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어느 곳 어느 때 아주 사소한 흐느낌조차
울기 위해 집으로 달려간, 그때는 스무살
수업을 마치고 과제를 제출하고 사려 깊은 학생이 되어
조금씩 꼬깃해져가는 표정을 가방 깊숙이 밀어넣고 가까스로
열어젖힌 싸구려 자취방은 더없이 고요해
너무 낮고 너무 어두워 울음은
다름 아닌 거기에 살고 있음을 알았다
마음이 타들어갈 때마다 기꺼이 방문을 열어준
나의 울음, 엄마가 죽던 밤에도
사랑이 더운 손을 뿌리치던 마지막 순간에도 나는
그 방에 있었다 볕이 들지 않는 방
아릿한 곰팡내기가 명치를 꾹꾹 누르는 방
울음의 방으로 숨어들수록 울음은 아프고
어찌 된 영문인지
도무지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증발하는 물기처럼 어느새 울음은
거기에 살 수 없음을 알았다
한마디 인사도 없이 떠나갔음을
어디로 갔나 울음은
울음의 빈자리를 몹시 뒤척이던 나는
후미진 골목 끝
자취방은 헐리고 추진 스무살도 멀리 달아났으니
어디로, 말수가 적어 겉돌기만 하던 나의 울음은
(주)창비
창비시선 386
©박소란 시집,『심장에 가까운 말』2015
46-47쪽
나는 그래
울음에도 종류가 있다.
슬픈 울음에도 종류가 있고
아픈 울음에도 있으며
아린 울음에도 있다.
모두 울음이라 말하며 각자 다른 울음을 토해내는 식인데
나도 자주 그런다.
간혹 시작은 이 울음이었다가
끝은 다른 울음이 되어버려 결국
이도저도 아닌, 울음을 한 바가지 쏟고
다시 그걸 남김없이 마시며 성질을 내기도 한다.
난 평생 '울음의 방'의 집주인이 될 수 없을 거란 확신과 함께.
하지만 나는 매일 그만두고 싶다.
'불현듯 슬프다'라고 그만 말하고 싶다.
아니, 언제 어디서든, 방에서 날 기다려줬으면 좋겠다.
내가 찾든 말든 상관없이.
이미 오래전에 떠난 집주인을 다시 찾고 싶지 않지만
그 '울음의 빈자리'를 두고 잠을 설치고 싶진 않으니까.
그러나 울음은 떠났다.
떠나야만 하는 이유를 말하지 않았지만, 알고 있었다.
그때의 난, 울음 밖에 몰랐었다.
울음이, 울음 말고도 할 줄 아는 게 얼마나 많았는지 알아주지 못했다.
그래서, 울음뿐이었고
그래도 울음뿐인 오늘.
이 혼란스러움을 온전히 알아주는 건
울음뿐인데.
종류도, 이유도, 결말도 수백 수천 가지인 울음뿐인데.
실은 다 내 울음 덕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