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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란 Aug 02. 2017

Faye가 아니었다면...

<송 투 송>은 루니 마라의 영화다. 나에겐.  

<송 투 송>(2017)  /  감독: 테렌스 맬릭 / 미국  /  드라마  /  청소년 관람불가  /  128분


  Faye가 아니었다면…

     


  <송 투 송>엔 그저 입 밖으로 내뱉고 싶은 독백들이 난무하다. 그래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도 숨이 턱턱 막힌다.

  분명 창문은 열려있는데 바람 한 점 불어오지 않아 커튼이 내가 보고자 하는 풍경을 모조리 가린 기분이다.



  네 남녀의 삶은 거칠게 해체되어 있었다. 시간과 공간엔 의미가 없었고, 오로지 그들의 한스럽고 비탄에 젖은 언어와 행위에 집중해야 했다.


출처: 영화 <송 투 송> 중


  음악도 사랑도 잃은 BV(라이언 고슬링)는 ‘지금은 즐겁지만, 인생 전체는 즐겁지 않아 역겨울 뿐이다.’라고 읊조린다. 세상과의 소통창구를 잃어버린 그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병상에 누워있는 아버지와 도움 안 되는 동생, 미쳐가는 어머니뿐이다.


출처: 영화 <송 투 송> 중


  Cook(마이클 패스벤더)에겐 돈과 명예를 포함한 모든 게 다 거품이다. 그는 영원히 실존하기 위해 아니 신이 되기 위해 사랑마저도 다른 세계에서 주무르는 폭주 기관차다. 그러나 이미 추한 삶의 끝을 예감한 인간의 비참한 몸부림일 뿐이었다.


  분명 Rhonda(나탈리 포트만)에게도 활짝 펄럭일 수 있는 날개가 있었을 것이다. 언제든 스스로 자유로울 수 있는 인생임을 왜 그녀는 끝내 깨닫지 못했을까. Cook의 폭력적인 사랑 방식에 Rhonda는 날아가지 못하고 주저앉는다. “엄마 내 자신이 두려워요. 내 안에 증오가 있어요. 자유롭고 싶은데 그게 날 힘들게 해요.”라며. 그녀의 추락에 엄마의 세상도, 내 마음도 무너졌다.


출처: 영화 <송 투 송> 중


  Faye(루니 마라)의 고백만으로 나는 한 편의 또 다른 영화를 본 느낌이었다. 빠져나갈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져 허우적대는 Faye를 연기한 루니 마라.

  Faye는 토드 헤인즈 감독의 <캐롤> 속 테레즈 그 이상이었다. <캐롤>에서 테레즈의 눈빛에 반했었다면, <송 투 송>에선 Faye의 목소리에 반해버렸다. 그녀의 독백은 정말 최고였다.


  BV와 사랑을 나누면 나눌수록 혼란스러운 Faye. 그녀의 거대했던 욕망은 점점 스스로에 의해 밑동이 잘려나가기 시작한다. 열망하고 영원하길 바랐던 그녀의 모든 것이 그대로 쓰러진다. 자의로 멈추지 못해 고통 받고, 뉘우치며 울부짖는다. 제발 다시 돌아오라고.


  뒤늦게 깨달은 그녀의 시선과 감정, 언어가 <송 투 송>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모든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다던 그녀의 지친 목소리부터, 다시 숨쉬기 위해 가슴 깊숙이 박힌 가시를 빼내는 그녀의 간절한 행위까지 전부.    


  기계 위에 널브러져 이동하는 핏빛 가득한 고기조각들을 어둠 속에서 지켜보던 Faye의 눈빛을 난 지금도 선명히 기억한다.

  

출처: 영화 <송 투 송> 중

  

  음악은 잘 모르겠다. 감독이 음악을 전혀 얘기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얽히고설킨 네 남녀의 관계처럼 카메라 시선 역시 얼마나 몽롱하고 흐릿한지 모른다. 분명 호불호가 극명히 갈릴 것이다. 언어와 행위가 구체적이면서 적나라하지만, 난 커튼을 붙잡고 보느라 애를 먹었다.

  Faye가 아니었다면, 다 못 봤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에게 <송 투 송>은 ‘불친절한 영화씨’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친절한 영화씨’도 아니었다. 그저 어렵고, 씁쓸했으며, 끝까지 어지러웠을 뿐이다.



- 관객동아리 씨네몽 회원 김진실



P.S 

  이 글은 페이스북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 게시된 글입니다.

  전주독립영화관 관객동아리 '씨네몽'회원으로 개봉작을 본 후 짧은 리뷰를 올리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페이스북에 매주 씨네몽 회원의 개봉작 리뷰가 매주 개제될 예정이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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