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광규 시집,『담장을 허물다』2013
초원에서는 사람이 죽어도 슬퍼하지 않는다고 한다
제사도 없다고 한다
장수들의 무덤도 돌을 빙 둘러 박은 평토장이다
말을 타고 언덕을 내려오는데
흰 털 짐승 한마리가
흙에 녹아내려 초원과 거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는 죽음도
자연이 박아넣는 은입사구름 문양 공예품이다
(주)창비
창비시선 365
©공광규 시집,『담장을 허물다』2013
55쪽
나는 그래
죽음의 문양. 이곳에 있었던 자의 마지막 흔적.
'자연이 박아넣는' 자연스러운 행보.
슬픔이 담긴 눈물이 땅바닥에 떨어진다.
어느새 파도가 되어 바닥을 덮치는데,
그의 마지막 얼굴은 끝내 잠기지 않는다.
흐른다.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르며, 눈물 한 방울 흡수하지 않는다.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으나, 하늘을 가릴 생각은 추호도 없는 구름처럼.
울고 있지만, 너무나 그립지만, 그래서 잊지 않으려 또 울지만.
함께 했던 이와 오늘도 끝인사를 한다.
지나치는 구름 아래서,
흘러가는 바다 위에서,
꿈틀대는 마음들이 잠기는 법 없이,
숨겨지는 일 없이
내일 있을 끝인사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