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률,『눈사람 여관』2013
서로 좋아하는 저이들 사이에는
눈알 속에 소금기가 끼어 있는가 보다
그래서 저리도 저릿저릿하다는 듯 뛰고 있나 보다
서로서로 좋아하는 저네들 사이에는
풀 같은 것이 자라고 있어
그래서 저토록 터지도록 부비며 깎고 있나 보다
어질고 착하게 꽃들을 쓰다듬고
앙큼하게 뒷산도 오르며
저리도 좋아라 어때 부딪히며
조금씩 조금씩 산을 훑어내리다 보다
그리하여 모든 이야기를 0에서 시작하고
사랑의 모든 시제는 미지의 것을 사용하나 보다
손으로 자신을 핥아서 스스로를 당부하고
그 손을 뻗어 여름 잎이 돋게 하는 그것은
애쓰는 일이 아니라
불빛이 닿아서 되는 일
사람이 사람을 저리도 좋아하는 것은
오장육부의 빈 골을 채우는 일 같아
손으로 닿아서 통하는 것도 아닌
연기와 연기가 서로 하는 일
혼자서는 헐렁해서
자꾸 미끄러지는 비탈
도저히 그 막막을 어쩌지 못해
흐릿흐릿 구겨진 그것을 자꾸 펴려고 하나 보다
(주)문학과지성사
문학과지성 시인선 434
©이병률,『눈사람 여관』2013
44-45쪽
나는 그래
다정한 사람에게선 다정한 구력을 측정할 수 없다.
측정 불가란 말도 다정해서
다정함이 모든 걸 이긴다는,
그런 세상 따뜻하고 힘 있는 선언을 하고자,
다정함의 기원을 찾기로 했다
사랑에서 발견되고
우정에서 드러나고
너와 나 사이에서 발현되는,
그런 당연한 기류고
필수적인 교류라 믿었는데
이럴 수가, 대체 다정함은 어디서 오는가.
다정함의 온도를 찾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을까.
누군가 그랬다,
다정함은 하늘 위에서 뚝 떨어지는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