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률,『눈사람 여관』2013
옆에서 심하게 울고 있는 사내가 있다
살아야 하겠는 것
누구나 울 수 있는 면허를 가지고 있는 병실
바깥의 어둠이 저희들끼리 하도 몸을 감아서
어제인가는 옆 침대에 누운 나도 잠시 울었다
어느 병실이나 어찌할 수 없는 것처럼 깊은 밤
한 존재가 운다
오늘 그가 심장의 무게를 많이 덜어냈으니 누군가 조용히 하라 해도 소용이 없겠다
퇴원하고 찾은 바닷가,
한 노인이 앉아 한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주와 북어 한 마리 놓고
한 노인이 눈발 속에 눈물 속에 굳어 있었다
얼룩도 아니고
고단한 것도 아니며
딱딱하며 불안한 것도 아닌
왜 눈물들은 모든 것의 염분인지
새들은 알까
눈을 밟고 지나가면 자신들의 자국이 남는다는 사실을
눈 내리는 바다에 새 두 마리 어울려 춤을 추다 간듯 보이는 발자국 어지러이 찍혀 있었다
(주)문학과지성사
문학과지성 시인선 434
©이병률,『눈사람 여관』2013
98-99쪽
나는 그래
걱정 인형도 좋지만, 나는 추억 인형을 더 좋아한다.
먼지 없이 깨끗이 보관된 사진첩 같기도,
책상 위에 놓인 작은 피규어 같기도
바람만 있으면 돌아가는 바람개비 같기도 한,
인형이라 칭할 뿐 형태가 없는,
아니 형태가 자유로운 추억 인형이다.
눈에 한 번, 두 번 담을 때마다
그를 추억한다. 좋은 이야기와 나쁜 이야기에서 벗어나
그저 그를 생각하는 일이다.
그것만으로 난 다시 현실로 돌아갈 힘을 얻는다.
가끔은 떠올리는 일로도 눈물이 흐르지만
추억 인형은, 언제나 본인의 일을 소홀히 하지 않기에
알 것이다. '자신들의 자국이 남는다는 사실을'
내 마음에 찍힌 그리움이, 얼룩이,
얼마나 날 주저앉히고
우릴 다시 일으켜 세우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