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보선, 2011,『눈앞에 없는 사람』
고양이 한 마리
도로 위에 낙엽처럼 누워 있다
몸퉁이 네모나고 다리가 둥글게 말린
코끼리 같은 버스가
죽은 고양이 앞에 애도하듯 멈춰 있다
누군가는 말한다
스키드 마크는
바퀴도 번민한다는 뜻이지
누군가 답한다
종점에서 바퀴는 울음을 터뜨릴 거야
새 시장은 계몽된 도시를 꿈꾸지만
시민들은 고독하고 또한 고독하다
했던 말을 자꾸 되풀이하는 것이 그 증거다
멀리서 아련히 사이렌이 울린다
한때 그것은 독재자가 돋우는 공포의 심지였으나
이제는 맹인을 이끄는 치자꽃 향기처럼 서글프다
누군가 말한다
두고 봐
종점에서 바퀴는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 거야
하루 또 하루
시민들은 고독하고 또한 고독하다
친구들과 죽은 자의 차이가 사라지는 것이 그 증거다.
한 사람 또 한 사람
고양이 한 마리 또 한 마리
(주)문학과지성사
문학과지성 시인선 397
©심보선, 2011,『눈앞에 없는 사람』
40-41쪽
나는 그래
어디까지나 말이다.
몇 가지 단어로 이뤄진, 단어로 단어를 꿴 뭐 그런,
도로 위, 트럭이 지나간 자리에 있는- 고독.
기분이 울적해져서 다른 말로 바꿔 말하기로 했다.
하 참으로 지난하네.
뭐 이렇게 고될까.
좋게 말하고 좋게 생각하고 좋게 받아들이긴 어려운데
반대로는 참으로 쉬운 도로 위 나란 한 마리.
사실, 마지막으로 기록됐던 나의 흔적은
예고편이다. 예고편이기에 대비할 수 있지만,
'두고 봐', 내 예고편은 늘 결말에 쓰인다.
꿈이 있다,
트럭의 바퀴로서 분명한 목표가 있다.
마지막에 당도한 순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내 눈에 닭똥 같은 눈물이 나오는 예고편을 내보낼 거란 다짐!
또 하루가 간다.
끝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하고
또 당연한 듯 '도로 위에 낙엽처럼 누워 있'는.
종점이 다가온다. 또 같은 하루다.
나는 언제쯤 예고편에 내 모든 고독을 비워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