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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란 Sep 16. 2017

더 나아가지 못한,
<매혹당한 사람들>

카멜레온 같은 인간의 본성을 꼬집고 있는 영화인데도...

<매혹당한 사람들> (2017) /  감독: 소피아 코폴라  /  스릴러, 드라마  /  미국  /  94분



  더 나아가지 못한, <매혹당한 사람들>



  <매혹당한 사람들>은 뛰어난 영상미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반 이상을 숨기고 있다. 따라서 끝내 터져버리고 마는 각 인물의 욕망을 관객은 단 몇 장면만으로 알아차려야 한다. 결국, 관객은 소피아 코폴라 감독이 의도적으로 숨긴 장면들을 얼마나 많이 상상하면서 봤는지에 따라 <매혹당한 사람들>을 제대로 즐길 수도, 지루해할 수도 있다.


  첫 장면부터 느껴지는 스산함은 정말 좋았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과 분위기를 단번에 정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스산함은 끝을 향해 갈수록 그 자체의 고유한 힘을 잃어버리고 만다. 뒤늦게 휘몰아치는 엄청난(?) 사건으로도 한 단계 더 나아가지 못한 채 그저 시간의 흐름에 맡겨둔 채 표류한다.

  누군가는 ‘<매혹당한 사람들>에 스릴감이 충분했다.’ 말할 수 있지만, 나에겐 그저 호기심과 질투로 이루어진 애매한 긴장감만이 가득했던, 썩 개운치 않았던 영화다.


출처: 영화 <매혹당한 사람들>


  <매혹당한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중요한 존의 등장 이후로도 모든 힘을 영상미에 쏟고 있다는 점이다. 소품과 의상 그리고 섬뜩할 정도로 고요한 학교의 외부 공간과 내부 공간, 존이 지내고 있는 음악실 문에 꽂혀 있는 열쇠에만 집중할 뿐이다. 즉, 존의 노골적인 웃음과 세 여인의 숨길 수 없는 몸짓, 그리고 어린 여자아이들의 호기심까지 모든 인물의 뚜렷한 개성과 욕망이 영화 속에 묻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혹당한 사람들>은 관객을 단번에 매혹시키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배우들의 대화와 눈빛으로만 이야기를 전개하는 초강수를 둔 이유가 뭘까.


  정말 단 한 남성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한 여성들의 이야기로만 기억되고 싶은 걸까.


출처: 영화 <매혹당한 사람들>

   

  <매혹당한 사람들>은 집단과 타인(개인)이 충돌한 이야기다. 인간이 개인 자신의 욕망을 위해 얼마나 추잡해지고 우스꽝스럽게 변하는지 보여주는 동시에 자신이 속한 집단의 안정을 위해 극단적인 살인까지 함께 저지르는 모습까지 모두 낱낱이 드러내기 때문이다.


  즉, 카멜레온 같은 인간의 본성을 꼬집고 있는 영화임이 틀림없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래야만 원작을 리메이크했다고 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매혹당한 사람들>은 오로지 관객에게 존이 과연 어느 방에 들어갈지 궁금해하도록 유도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더 아쉬운 영화다. 원작의 야성을 넘지 못한 아쉬움도 크지만, 별개의 독자적인 작품으로 봐도 특별한 힘이 보이지 않아 더 안타깝다.

  너무 절제한 나머지 인물들이 뿜어내는 섬세한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도 전에 존의 마지막을 봐야 하는 아찔한 영화였다.


출처: 영화 <매혹당한 사람들>  중

    

  유명한 배우들 속에서도 오직 에이미를 연기한 우나 로렌스만 생각난 작품이었다.

  에이미의 콧노래만이 유일하게 지금까지도 내 기억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위에서 아래로, 하늘을 가린 숲에서 가로수 길의 끝을 가려버린 숲으로 전환되는 시선과 함께 콧노래를 부르며 버섯을 채취하는 에이미의 뒷모습이 나에겐 <매혹당한 사람들>의 명장면이다.

  

  

  글, 관객동아리 씨네몽 회원 김진실


P.S 

  이 글은 페이스북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 게시된 글입니다.

  전주독립영화관 관객동아리 '씨네몽'회원으로 개봉작을 본 후 짧은 리뷰를 올리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페이스북에 매주 씨네몽 회원의 개봉작 리뷰가 매주 개제될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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