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란 Dec 09. 2017

참을 수 없는 가벼움과 목마름

<시시콜콜한 이야기>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세상 가볍게 살려는 우리

<시시콜콜한 이야기> (2017)

 감독: 조용익  /  출연: 이수경, 엄태구  /  멜로, 로맨스, 드라마  /  33분  / 한국

    

 

  참을 수 없는 가벼움과 목마름   

     

     

  요즘엔 뭐든 가볍고, 간단하고, 빠르고, 쉬운 게 최고다. 무엇을 보고, 읽고, 해석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모든 과정이 지루하고 버겁게만 느껴지는 지금 시대에 딱 맞는 말이다. 그 긴 과정의 끝이 주던 즐거움이 어느 순간 그 이상의 행복을 주지 못하자, 우린 과감히 과정을 생략하기 시작했다.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지 않아도 그냥 웃고 떠들 수 있는 것들에 쉽게 빠져들었다. 화려하고 돋보일수록 더 열광한다. ‘나’의 깊은 심연을 자물쇠로 잠가버리고, ‘아무런 생각(걱정) 없이 살고 싶다.’란 욕망을 속 시원하게 분출할 수만 있다면, 한없이 가벼워 보여도 괜찮으니까.

  그러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명품 배우들과 위트 넘치는 시나리오를 통해 현재의 우리를 다정하게 타이른다. “그렇게 간단하고 좋은 건 아니야.”라고.      


출처: 영화 <시시콜콜한 이야기> 중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다친 상처는 있어도 아문 상처는 없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사랑’이 우리와 그들의 매개체로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책임진다. 전형적인 구조를 갖고 있긴 하지만, 충분히 신선함과 청량감을 느낄 수 있다.

  사실 도환의 사랑 이야기가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말 그의 시나리오가 완벽히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믿는가? 물론 단정 지을 필욘 없다. 그의 말대로 “아주 시시한 이야기”일뿐이니까. 또 우린 그 이야기를 엄청난 집중력 없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점에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인간이 가진 복잡한 감정을 꾸밈없이 쉽고 빠르게 보여주며, 공감을 얻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도환에게 사랑은 인생의 중심축이지만, 한없이 아쉽고 부끄럽다. 충실한 타자기 소리와 줄담배의 한숨이 사랑했던 그녀의 독설과 융합돼 그의 하루는 여전히 부질없이 흘러갈 뿐이다. 앞으로 나아갈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튼튼하게 만들고 있는 계단의 주재료가 하필 실패한 사랑이라니. 정말 우리와 다를 바 없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 속 정원과 다림의 사랑 언어를 동경하며 자신의 아픈 실연을 시시한 책 한 권으로 퉁쳐보려는 도환의 모습에서 우린 거울 속 애처롭고, 안타까웠던 ‘나’를 발견한다. 결국, 그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가벼움이다. 중요한 전제가 있다면, 쉽게 사라지거나 가라앉지 않는 고통스러운, 가벼운 자극이어야 한다.

  그녀는 마치 신기루처럼 도환에게 다가왔다. 단 한 통의 문자로 단편영화제에 출품한 영화가 최종 탈락하였음을 알게 된 그에게 가만히 고갤 들어 나무를 바라보던 은하의 모습은 명백하게 조작되었음에도 자연스럽게 느껴져야만 했다. 프리랜서 모임에서 계속 자신을 쳐다보며 수줍게 웃었던 그녀의 언어가 분명 자기에게 보내는 일종의 신호였음을 깨닫기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은하의 존재는 성이 ‘심’이란 걸 도환이 안 순간부터 그가 꿈꾸던 ‘정원의 다림’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우연이라고 말하고 필연으로 인식해버리는 오류를 도환이 모를 일 없었겠지만, 심은하는 답이 보이지 않았던 그에겐 이미 완벽한 탈출구였다.


출처: 영화 <시시콜콜한 이야기> 중


  그러나 탈출구는 만든다고 해서 완성될 수 있는 마법의 문이 아니다. ‘나는 왜 어디에나 있는 출구를 보지 못하고 굳이 만들고 있었지?’라고 깨달아야만 알 수 있다. 은하의 저돌적인 행동에 잠시 푹 빠져있던 도환은 점차 자각한다. 서로의 시시한 이야기를 다시 써가는 데 온 힘을 다했던 두 사람의 만남은 사실 겨우 시작 단계의 ‘썸’이었고. 오늘날 청춘에게 ‘썸’은 사랑으로 발전하기엔 너무 빈번해서 탈이었으니 이제 도환에게 남은 일은 선배의 자전거를 빌려 은하에게 질주하는 것뿐이다. 그는 은하를 보자마자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만들었던 가면을 땅바닥에 내리꽂으며 소리친다. “너 나빴어!”라고. 그러나 도환은 여전히 자신이 쉽게 내린 착각 속에서 다림을 찾고 있었다. 상대방이 불편할까 봐 묻지 않고 이해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릴 해대면서.

  사실 은하는 도환에게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내가 말하는 것은 그저 눈에 보이는 가벼움이 아니며, 영양가 없는 시시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그러나 도환에게 그녀의 신호는 자신이 왜곡한 다림의 엉뚱하면서도 대담하고, 귀여운 모습과 다름없었다.

     

   “알지도 못하면서.”

     

  심은하의 똑 부러지는 말 한마디로 도환의 모든 의심과 서운함은 안도감으로 변화된다. 너무나도 ‘가볍고 쉽게.’ 그리곤 자신도 모르게 그녀와 <8월의 크리스마스> 속 한 장면을 연출한다. 나무 아래에서 둘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서로를 향해 웃는 그 자연스러운 모습이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마지막까지 보여주고자 했던, 견고한 시선이었을 것이다. 도환은 자신의 동굴 속에서 찾아낸 ‘텅 빈 가벼움’을 깨트리자 그 누구의 다림이 아닌 완전한 ‘심은하’가 보이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게 당연했던 그녀의 시시한 이야기도 이젠 이해할 수 있으리라.

 

  우린 도환처럼 다 꺼내놓기 어려운 자신의 이야기를 길바닥에 툭툭 흩뿌려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초라하고 보잘것없던 이야기’로 바꾸려고 노력한다. 더 쉽고 간결하게 말해버리면, 간단하게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착각해서다. 굳이 어렵게 갈 필요는 없으니까. 가벼우면 가벼울수록 ‘나’ 자신이 편해질 거라 믿고 싶어 한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니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 각자의 착각 속에 빠져 사는 셈이다. 물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우리의 시선이 무조건 비난받아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누구도 해결해줄 수 없는 일임은 분명하다. 나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그저 가볍다’ 고만 치부해선 안 된다는 점과 같은 맥락이다. 내가 내린 결정으로 인한 책임을 ‘모두’ 남에게 떠넘길 순 없음으로.

 

출처: 영화 <시시콜콜한 이야기> 중


  <시시콜콜한 이야기>엔 감독의 확고한 시선이 가득하다. 관객에게 다가가는 모습 역시 전문가나 다름없다. 그들의 설레고 간질거리는 썸을 오늘날 청춘들의 익숙한 연애방식으로 보여주는 것도, 영화 초반부터 넘쳐나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장면을 오마주한 것도 모두 감독만의 확실한 신호가 있어서 가능했다. 충분히 좋은 작품이다.   

 

   우린 쉽게 즐기더라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불쑥 결정해버리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언제나 목말라해야 한다. 그런 자신에 자연스러워지면서 성장해야 한다. 이 작품은 분명 그 부분까지도 보여주고 있다. “이제 우리 영상통화 그만해.”라고 은하에게 강하게 말한, 한때 우유부단하고 쉽게 흔들렸던 도환을 통해.

     

     

글_ 관객 동아리 씨네몽 김진실





PS.이 비평문은 '제1회 전북겨울영화제 프로그램 노트'에 실린 글이기도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누구의 시선에만 머무르지 않는   세 마디의 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