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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란 Jan 11. 2018

원더풀한 미완성작

<원더풀 라이프>  우린 기억하고, 선택하고, 공감함으로써 느낄 수 있다. 

<원더풀 라이프> /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  1998 / 전체관람가 / 118분

     

 원더풀한 미완성작  

     

     

모치즈키와 시오리는 죽은 이들이 천국에 가기 전 7일 동안 머무는 중간역, 림보에서 일한다. 림보 직원의 업무는 딱 하나지만, 반복의 연속이다. 직원들은 일주일 동안 머무를 사람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추억을 고르게 한 후 그 순간을 재현해 영상으로 만든다. 완성한 작품들은 토요일에 한 곳에서 함께 관람하는데, 이를 통해 사람들은 단 하나의 행복한 기억을 품고 영원한 천국으로 떠날 수 있게 된다.


출처: 영화 <원더풀 라이프> 중

 

거창한 판타지를 기대했다면, 조금 아쉬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원더풀 라이프>는 판타지적인 측면으로만 보기엔 너무나 아까운 작품이다. 터무니없는 미사여구로 치장하지 않아 담백하면서 쉴 틈 없이 관객의 마음을 흔드는 데 능하다.

 

어떻게 딱 하나의 추억만 고를 수 있겠냐는 할아버지부터 추억 같은 건 절대 고르지 않겠다는 청년까지 림보 직원들은 이번 주도 각자 배정받은 사람 중 몇몇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그러나 직원들은 엇나가는 이들에게 절대 화내지 않는다. 이 점이 자칫 지루함을 가져올 순 있지만, <원더풀 라이프>만의 변주이자 반전이며, 긴 호흡임을 고려한다면 결과적으론 충분히 만족스러울 것이다.    

     

출처: 영화 <원더풀 라이프> 중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림보의 시간은 오직 한 가지의 추억을 고르는 이들에게 맞춰 흐른다. 오로지 꽃만 쫓는 할머니의 시간과 71년 동안 살아온 인생을 71편의 비디오로 봐야만 하는 할아버지의 시간은 분명 다르게 흘러가지만, 결국 같은 세트장에서 만나게 된다.

중간역엔 규칙과 계획이 예외와 균열과 함께 공존한다. 심지어 이 이질적인 시간 속엔 사랑도 자리하고 있다. 어쩌면 림보는 인간의 삶이 끝없이 순환되어 만들어진 공간으로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린 ‘기억’하고, ‘선택’하고, ‘공감’할 수만 있다면, 어디든 뿌리내려 함께 살아갈 수 있지 않은가.

  

끝이자 시작인 종소리, 안개 속에 숨은 흰 도화지 문, 마지막 책갈피 세트장, 기록의 상영, 어디서든 피어나는 사랑. 아마 궁금한 점들이 눈처럼 한가득 창틀에 쌓일 때쯤이면 시오리의 달이 보일 것이고, 모치즈키가 읽던 추리소설의 독자가 바뀌었음을 알아차릴 것이다.

선택하지 않는 선택 역시 타인의 일부임을 이해한다면, 우리도 책상과 의자가 놓인 방 앞에 서서 웃으며 문을 두드릴 수 있지 않을까.     

   

출처: 영화 <원더풀 라이프> 중

  

<원더풀 라이프>는 완성된 작품이 아니다. 림보의 규칙을 지키지 않는 몇 사람에 의해 끊임없이 새롭게 탄생할 것이다. 자세하게 기억해도, 끈질기게 외면해도 괜찮다.

     

모두 원더풀한 미완성작들일 테니까.  

  

     

글_관객동아리 씨네몽 김진실



P.S  이 글은 페이스북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도 게시된 글입니다.

전주독립영화관 관객동아리 '씨네몽'회원으로 개봉작을 본 후 리뷰를 올리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페이스북에 매주 씨네몽 회원의 개봉작 리뷰가 개제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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