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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란 Feb 06. 2018

작품을 향한 정확한 초점과
불확실한 상상의 조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나는 그림밖에 안 보이던데.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Girl with a Pearl Earring (2003)  

 영국, 룩셈부르크 | 드라마, 로맨스 | 2018.02.01 재개봉 | 15세이상관람가 | 100분

 감독: 피터 웨버 | 출연: 콜린 퍼스, 스칼렛 요한슨, 톰 윌킨슨, 쥬디 파핏…

     

     

작품을 향한 정확한 초점과 불확실한 상상의 조화 

     

     

최근에 예술의 전당에서 마리 로랑생 展을 보고 왔다. 프랑스 예술에 한 획은 그은 그녀의 수많은 작품을 눈과 마음에 담고 왔지만, 지금까지 기억 속에 맴도는 그림은 딱 한 점뿐이다.

<책 읽는 여자>(1913). 책을 펴고 있지만, 시선이 허공에 맴돌고 있는 여자에겐 분명 말 못할 사연이 있었다. 나는 잔뜩 미간을 찌푸린 그녀에게서 풍기는 화가의 숨겨진 이야기가 궁금했다. 검은 눈에 담긴 공허함과 절제된 몸의 선과, 화려하면서도 외로워 보이는 전작 속 여성들과는 분명히 다른 여성이었다. 로랑생이 <책 읽는 여자>를 그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 비밀스러움에 다양한 상상력을 펼쳤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각기 다른 사건이 떠올랐고, 모두 다른 결말을 가진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출처: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중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역시 같은 과정으로 탄생한 작품이다. 누구나 소녀를 보면서 궁금증을 가졌을 테니까. 실제 인물 논란부터 하녀 복장을 한 소녀, 그녀의 귀에 걸린 고가의 진주 귀걸이, 복잡한 감정이 담긴 두 눈까지. 알려진 이야기가 없어 더 궁금했던 그림의 숨겨진 내막을 감독은 원작의 힘을 조금 빌려 영상으로 만들었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는 새로운 하녀로 들어온 그리트의 재능을 우연히 발견한다. 그는 색과 빛에 섬세하게 반응하는 소녀의 감수성 덕에 메말라가던 자신의 예술혼을 다시 불태운다. 한없이 예민하지만, 그만큼 강인했던 그리트는 페르메이르의 뮤즈가 되어간다.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던 금단의 화실을 청소하고, 물감을 사람들 몰래 만들고, 심지어는 모델 일까지 하게 된다. 후원자의 입맛에 맞게 그려야만 했던 화가는 소녀를 통해 과감히 자신만의 예술성을 견고히 다져간다. 소녀는 언제든 쫓겨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그림에 대한 호기심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진주 귀걸이는 두 인물의 비밀을 간직한 매개체로 사건의 극적인 반전 역할을 하며 그 끝을 장식한다.

     

출처: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중


피터 웨버는 원작과 달리 화가와 소녀의 관계를 뚜렷하게 정의하지 않는다. 문제는 관객 대부분이 이들의 관계를 격정적인 로맨스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결코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예비 관객들에게만큼은 절대 권하고 싶지 않은 관점이다. 그렇게 되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상상력의 끝이 무른 작품으로 치부될 뿐이다. ‘섬세하다’, ‘고혹스럽다’, ‘매혹스럽다’, ‘아름답다’ 등… 과 같은 수식어의 종착역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왜 화가와 소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에만 집중해 홍보하고 있을까. 심지어 인터넷 홈페이지에선 [“더 이상 감추지 말아요.” 아름다운 유화 뒤에 가려진 치명적인 사랑!]이라고 떠들어대고 있으니 말 다 한 셈이다.  

 이 영화는 인물, 사건, 관계를 모조리 제외하고 오직 그림(작품)만 보고 얘기해야 한다. 톰 후퍼 감독의 《대니쉬 걸》처럼 인물을 정면에 내세운, ‘예술가를 위한 영화’가 아니란 소리다. 입술을 핥고 귀를 뚫는 그리트의 모습보다 진주 귀걸이에서 시작돼 쉽게 가늠할 수 없는 눈을 가진 소녀의 얼굴이 전부 보여야 한다. 좌중의 시선을 압도하는 그 비밀스러운 눈길에 빠져 나만의 상상력을 써 내려간다면, 그만큼 기분 좋은 영화 관람 후기는 없지 않을까.

 

출처: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중


나는 신비롭게 표현된 영상미와 섬세함을 낳은 음악의 조화 덕에 북유럽의 모나리자를 더 가깝게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누구도 진실을 확실하게 단정 짓지 않아 좋았다. 모두에게 열린 결말로 남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허름한 옷을 입은 소녀’, ‘진주 귀걸이’ 그리고 ‘누군가에 매료된 듯한 눈’이 결코 같은 등식으로 함께 풀이될 수 없음을 한 예로써 보여준 작품이다.

 

재개봉한 영화인만큼 더 많은 관객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 푹 빠져들었으면 좋겠다. 하나 더 바라는 게 있다면, 오로지 작품에만 꽂힌 초점과 불확실한 상상의 조화에 힘입어 이 예술을 즐기는 분이 또 있었으면 한다.



글_관객동아리 씨네몽 김진실





P.S  이 글은 페이스북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도 게시된 글입니다.

전주독립영화관 관객동아리 '씨네몽'회원으로 개봉작을 본 후 리뷰를 올리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페이스북에 매주 씨네몽 회원의 개봉작 리뷰가 개제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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