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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란 Mar 27. 2018

'영화'와 '커피' 그리고 '펜'과 '사진기'

<소공녀>, 전고운 감독 / 강력 추천합니다.

<소공녀> Microhabitat, 2017 제작 

전고운 감독 | 한국 |  드라마 |  2018.03.22 개봉 |  15세 이상 관람가 |  106분



영화’와 ‘커피’ 그리고 ‘펜’과 '사진기'




<소공녀>는 약간의 환상을 갖고 보는 걸 추천한다. 딱 미소의 담배 한 모금 정도면 된다. 위스키 한 잔이면 되고, 남자 친구의 애정 어린 한숨 한 줌이면 된다. 


우리는 ‘누구나 살면서 많은 것을 포기해.’라고 즐겨 말한다. 그 한 마디가 아니면, 현재의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위로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긍정 마인드에도 한계는 찾아온다. ‘왜 포기해야 해?’라고 울분이 터져 나올 때, 불현듯 미소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세상은 ‘담배’, ‘위스키’, ‘남자 친구(한솔)’만 있으면 아무 탈 없이 돌아간다. 미소의 모든 것이기 때문에 집은 과감히 포기한다. 아니 그냥 버린다. 과감하단 표현 역시 제삼자의 편협한 시선일 뿐이다. 


출처: 영화<소공녀> 중


잠잘 곳을 해결하기 위해 과거 밴드를 함께 했던 친구들에게 찾아가는 미소의 여행기가 <소공녀>의 이야기다. 눈여겨볼 점은 <소공녀>가 미소란 인물을 주변 인물들을 통해서만 보여준다는 점이다. 정말 미소의 언어가 필요한 장면을 제외하곤 대부분 정제되어 있다. 그런데도 관객은 변화무쌍하면서도 굳건한 '소공녀'를 아무런 어색함 없이 만난다. 그게 바로 <소공녀>가 가진 중심이고 힘이다.


미소의 매력은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과 몸짓에 있다. 

그녀에게 고민은 바보 같은 짓이다. 결정한 사항은 곧바로 행동으로, 실천으로 옮긴다. 그것이 그녀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실제로 고봉곤 편집기사는 오로지 미소의 뚜렷한 정체성에 맞춰 과감하게 편집했다고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 이유로 주옥같은 씬(장면)들이 모조리 잘려나가야 했다고 한다.) 


집은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    


사람들이 삶을 살기 위해 규정한 프레임이 ‘평범함’이라면, 미소가 규정한 프레임은 ‘나다움’이다. 그녀는 진정한 나다움을 찾기 위해 자기계발서와 각종 교양 프로그램에 빠져있는 누구와는 다르다. 미소의 친구들은 그녀를 ‘한결같은 아이’라고 표현한다. 그들은 변하지 않는 진실처럼, 미소는 아무리 모욕당하고 짓밟혀도 그다음 날 아무렇지 않게 트렁크를 끌고 떠돌아다닐 것으로 생각한다. 힘들게 변했고, 여전히 변하는 중인 친구들에게 미소의 웃음과 음식 솜씨는 그저 그런 추억팔이가 아니니까. 그래서 그들은 자기의 무의식에 깔린 부러움을 자기 한탄으로 바꿔 소공녀에게 쏘아붙인다. “그 사랑 참 염치없다.”라고.


출처: 영화<소공녀> 중

어른과 성숙도는 비례하지 않는다. 성숙도와 공감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한 어르신의 말이 나의 뒤통수를 때렸다. 너무 충격적이었다.


영화니까 가능하지절대 저렇게 살 수 없어현실에 살면현실에 맞게 살아야지.”


그의 말에 동조하는가. 정말 내가 너무 울컥한 건가? 

분명한 건, 모든 것을 통달한 척 내뱉는 저 한 마디가 또 다른 소공녀에겐 절대 들리지 않았기를 바랐다.  

묻고 싶었다. “정말 당신은 <소공녀>를 본 것이 맞는가?”


출처: 영화<소공녀> 중


소공녀의 하루살이가 너무 비현실적이라 환상을 갖고 봤으면 하고 말한 게 아니다. 미소처럼 살아야만 행복한 건 결코 아니니까. 각자의 주관대로 꿋꿋하게 살면 된다. 어떤 방식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미소에게 담배와 위스키와 사랑이 있듯, 누구에게나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 있으니까. 

좋고 나쁨을 떠나 나의 하루를 버티게 하는 것들로 오늘도, 내일도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나는 많은 이들이 <소공녀>를 통해 충분히 위로받았으면 한다. 미소에게서 두 손을 불끈 쥘 힘과 용기를 얻었으면 한다. 가끔은 ‘아니 지금 나는 뭐 하고 살고 있는 거지?’와 같은 온몸의 세포를 깨우는 경종을 느꼈으면 한다. 사실 그걸 아는 사람만큼 건강한 사람은 없다. 


세상에 유난스러운 취향이 어디 있으며, 무난한 성격은 또 어디 있는가. 

취향이면, 취향이고 성격이면 성격이지. 


세상엔 ‘소공녀’들이 넘쳐난다. 자신을 평범하다, 보통의 인간이라 정의하지 말자.

나아가 미소의 백발을 보며 그녀의 불안정한 미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의 몫이 아니다.


출처: 영화<소공녀> 중


영화의 끝자락, <소공녀>가 바치는 몽환적이면서도 희망적인 마지막 장면으로 모든 감상 리뷰를 마치려 한다.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그 장면으로 영화 <소공녀>는 앞으로도 꾸준히 사랑받을 것이라 확신한다. 


참고로, 나에겐 ‘영화’와 ‘커피’ 그리고 ‘펜’과 ‘사진기’만 있으면 충분하다.


 



_글 관객 동아리 씨네몽 김진실


PS 1. 전주 독립영화관에서 '다양한 시선으로 영화 보기'프로그램을 매월 1회씩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3월의 영화로 선정된  <소공녀>를 보고 난 후 '고봉곤 편집기사'님의 심층 해설을 들었습니다. 

여러분도 꼭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너무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PS 2.  이 글은 페이스북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도 게시된 글입니다.

전주독립영화관 관객동아리 '씨네몽'회원으로 개봉작을 본 후 리뷰를 올리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페이스북에 매주 씨네몽 회원의 개봉작 리뷰가 개제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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