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 시인
그는 얼마간의 가축을 키웠다
병아리들을 부화시켜 마당에 놓아먹였고
입덧이 심한 아내를 위해
얼룩 염소 한 마리를 사다가 젖을 짜 먹였다
염소가 언덕에서 풀을 뜯을 때
가만히 앉아 무슨 생각인가를 한없이 하는 사람이었다
염소가 풀을 다 뜯은 후에도
멀리서 들려오는 피리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었다
언덕의 풀처럼 나지막하고 바람에 잘 쓸리는 사람이었다
닭 키우는 걸 좋아했지만
죽은 닭은 잘 만지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갓 낳은 달걀과
마악 짜낸 염소젖,
생전에 그가 식구들에게 건네준 전부였다
그보다 따뜻한 것을 알지 못한다
계간《시산맥》
2018년 봄호
* 나는 그래
요즘 나는 새로움에 특별함을 느끼지 못해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고 있다.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다.
앞으로도, 아니.
오늘도 내일도 매번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그 어떤 것도 알지 못할 것 같다.
다 잊어버렸다. 그들도 나도.
오랜 시간 신뢰를 견고하게 쌓은 관계도 이렇게 위태로울 수 있을까.
과거의 나는 알고 있었을까.
개인의 다른 생각이 그들의 틀린 생각이 되어가는 당연함을 당연하다 생각하는 오늘의, 미래의 나를.
금기와 다를 바 없었던 신뢰는 실체가 없음에도 무한성을 띄고 그들을 치켜세우느라 바쁘다.
아마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죽은 것들에게도 '신뢰'를 강요했을 것이다.
이모가 그랬다.
"다 엿 먹으라고 해. 인간은 결국 혼자야."
그녀의 말속에서 처음으로 따뜻함을 느꼈다.
그 욱신거리는 뜨거움을 또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모든 긍정은 사실 부정의 자기부정에서 나온다고 했다.
이젠 너무 잘 알아 다 헤아리지 못하고, 마음 편하게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입모양까지 그대로 복사하는 능력이 더 이상 자랑스럽지 않다.
평생, 그보다 더 따뜻한 것을 알 수 없으면 어쩌지.
무섭다.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