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연 Apr 28. 2023

죽지 않음을 선택한다는 것은

김영민,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올해는 대부분의 회원 분들이 사회자를 맡은 세션에 직접 글을 써주셔서, 주인장인 제가 꽤나 오랜만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허무'는 제가 자주 느끼고 또 자주 생각하는 주제인데요.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허무를 극복하려고 하기보다 그것과 더불어서 살아가는 자세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대단한 목적이 없어진, 그냥 열기 없이 살아가는 삶의 순간들도 받아들이고 즐겨야 한다는 건데요. 그래서인지 이번 모임에서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가'가 아니라 '왜 죽지 않는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시간 속의 필멸자로, 언젠가는 끝을 맞이하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두는 당장 죽음에 뛰어들지 않고, 분명 삶을 선택하여 살고 있습니다. 죽음은 그 자체로 두렵기도 하고 과정도 아플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라,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경험하지 못하게 될 것들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아직 이곳이 내게 지옥은 아닌데, 여기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할 경험들이 남아있는데 쉽게 그 모든 것을 끝내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용기를 안 내고 그냥 지내다 보면 또 시간이 흘러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당연하게 '산다'고 생각하지만 죽지 않음을 매 순간 선택합니다. 어쩌면 그런 선택지가 내 삶에 아직은 남아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오늘도 지켜낸 인생은 참 다양한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테이크마다 살아 숨 쉬는 영화 같기도 하고, 고도를 기다리는 기나긴 시간 같기도 하고, 그 자리에 늘 있지만 주변의 영향을 받아 달라지는 바다 같기도, 또 나만의 방식으로 숨차지 않게 걸을 수 있는 산책 같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어떨 때는 질퍽대는 땅바닥 지렁이 같다가 또 어떤 날은 반짝반짝하는 별님 같습니다. 정신승리(마음의 탄력을 가지고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를 하자면 인생의 좋은 순간들(예: 독서모임 시간)을 여러 장면 떠올릴 수 있다는 건 적어도 내가 '허무'를 표상할 수 있는, 그것과 대조되는 다른 감정들을 경험해 봤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또한 그 많은 순간들에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주변과 계속해서 영향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의 존재만으로 허무를 이겨낼 수 있다면 나 또한 누군가의 지난한 삶을 견디게 하는 존재일 수도 있고, 그렇게 모두가 온기와 경험을 나누며 서로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위로가 되지 싶습니다.


이번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예술을 추천하면서 소소한 위로를 건넸습니다:

v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비긴 어게인>, <어바웃 타임>, <애프터 양>

v 노래 <하드코어 인생아>, <잘 듣고 있어요>

v 책 <개인적인 체험>

v 혼자 전시 가기, 글쓰기, 창작 활동하기


의식하지 못했지만 죽지 않을 이유는 꽤 많습니다.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조명을 좀 낮춘 채 침대에 기대어 글을 쓰는 지금도 너무 좋으니까요. 소중한 이야기 나누어 주어서 항상 고맙습니다.



*위 글은 김영민의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발췌한 구절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삶은 각자의 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