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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연 Jun 11. 2023

온전한 나로 살아가는 것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이번 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를 관통할만한 하나의 주제를 고민하다가, "온전한"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는 다양한 신경학적, 정신과적 질환과 그 결과를 사례를 통해 소개합니다. 대부분의 사례가 사실 굉장히 희소하게 느껴졌는데, 더욱이 우리가 평소에 당연하다고 느끼는 신체 능력이나 감각 등을 다루고 있어 아마 우리의 삶과 직접적인 연결을 짓기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운 좋게도, 우리는 책 속의 사례들에 처해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상황들을 가정하면서 나의 온전한 생활에 필수적인 요소들을 저울질해 볼 수 있었습니다. "만약 기억을 잃는다면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고유감각을 잃는다면?" 개인마다 생각의 차이는 있었지만, 치명적인 변화가 일어났을 때 각자가 이어갈 삶은 분명 현재 누리고 있는 삶과는 굉장히 다른 양상일 것이라는 점에 모두 동의했습니다. 물론 그 또한 삶이며, 올리버 색스의 말대로 모든 것을 잃어도 존재하는 '영혼' 역시 인간으로서의 고유성임을 증명하는 사례들이 있습니다만, 이 정도의 변화를 겪은 개인은 연속적인 자신으로는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기억을 잃은 나는 '어제의 나' '평생의 나'의 관점에서 다시는 이야기할 수 없을 테니까요.


한편으로는, 책 속의 환자들 혹은 자신의 정체성이 붕괴된 사람들의 삶을 함부로 동정하거나 재단할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고유감각을 잃고도 시각을 비롯한 다른 감각들을 극도로 훈련시켜 살아가는 크리스티너, 틱을 역이용해 이중생활을 하는 익살꾼 레이, 혹은 치료의 희망이 없지만 정원을 가꾸며 그 시간만은 온전히 자신으로 존재하던 여느 환자처럼 혼란 속에서 어떻게든 각자 존재하는 방식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질환이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에서 무력감을 느끼고, 과부하에 자신을 잃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통제 못할 회상에 빠지는 등, 다양한 상실과 과잉을 경험하면서 자신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그 감각과 아득히 멀어질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자신을 찾기 위한 투쟁은 모두가 필연적으로 겪고 있는 평생의 숙제 같은 것이라고도 생각됩니다. 병명을 진단받지 않더라도 말이죠.


삶은 이렇게 계속해서 생각하며 사는 일인 것 같습니다.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 정신적 조건을 논할 때, 우리는 '의지' '자신에 대한 믿음' '극복하려는 태도' 같은 단어들을 꺼냈습니다. 인지할 수만 있다면, 마음의 문제들은 알고 미리 대처할수록 내가 입을 데미지를 예측하고 주체적으로 상황을 바꾸어나갈 기회가 생기기도 합니다. 즉 지금 당장 고장나고 무너진 부분이 있더라도, 나와 내 주변사람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극복할 방법을 궁리하는 것이 고통의 굴레에서 조금이나마 빠져나오는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게 나를 덮쳐오는 병들에 대해 나만의 방식으로 대응하다 보면 이 또한 삶을 이어갈 힘을 길러주는 경험으로 쌓일 것이 분명합니다.


의식적인 노력 없이 온전히 연속적인 나로 존재할 수 있음에 새삼 감사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위 글은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 발췌한 구절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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