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저울질하기> # 1
여성을 주제로 한 실내화(室内画)를 많이 그렸던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그는 바로크 시대에 활동했던 네덜란드 화가다. 20년도 채 안 되는 화가 경력으로 약 40여 점(현존하는 작품 수)의 걸작을 남긴 그는 예술사의 전설이다.
천칭 저울로 보석 등 귀중품을 다는 장면은 네덜란드 장르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 중 하나다. 베르메르의 작품 <저울질하는 여인> 속 저울질은 평범한 가정에서 일상 있는 일이지만, 그 속에는 많은 상징적 도상과 의미가 담겨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해석이 따라다니는 작품이기도 하다.
창문을 통해 거실로 빛이 들어오고 있다. 그 빛은 한 여인과 주변을 비추고 있다. 커튼 사이로 흘러나온 빛을 따라가 본다.
그림 좌측 상단에는 거울(Mirror)이 걸려있다. 여인은 거실에 들어섰을 때, 창문 빛에 반사되어 온전히 드러난 자신의 얼굴을 거울을 통해 보았을 것이다.
빛은 어둠을 몰아냄과 동시에 그 안의 죄와 악을 들추어낸다. 하지만 우리말에 '거울'의 어원이 '거구루'이듯, 그녀는 지금 자신을 '거꾸로' 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머리에 흰 천을 쓴 여인은 자비로운 성모 마리아를 연상시킨다. 그러다 보니 여인의 모습은 가정집 주부라기보다는 기도하는 성모(聖母)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저울을 들고 있는 여인의 얼굴과 손에서 깊은 고뇌와 신중함이 엿보인다. 지금 그녀가 보석보다 더 심오한 무게감을 지닌 그 무언가를 저울로 다루고 있음을 화가는 암시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창문에서 새어 나온 빛이 실내의 사물들을 조용히 비추며 그 비밀을 알려주고 있다. 가장 넓은 빛을 받고 있는 그림 한 점이 여인 옆에 걸려있다.
어둡고 두꺼운 액자 틀 속에 담겨 있는 벽 그림은 비교적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이 도상은 <저울질하는 여인>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중요한 주제가 담겨 있을 것이다.
화면 상단 중앙에는 공중에 떠서, 두 팔을 들어 올린 인물이 보인다. 지옥행과 천국행을 명령하고 있는 심판자 예수다. 기독교 종말론을 그린 ‘최후의 심판(The Last Judgement)’이다.
이러한 특징적인 도상과 전체 분위기를 놓고 볼 때, 벽에 걸린 작품은 폴 랑드르 매너리즘 화가 제이콥 드 베커(Jacob de Backer)의 <최후의 심판(Last Judgment)>으로 추정된다.
작품 해석의 실마리가 되고 있는 제이콥의 작품이 화가 베르메르의 거실에 걸려 있다니,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요하네스 베르메르가 제이콥의 작품 <최후의 심판>을 실제로 소유했거나, 미술상인이기도 했던 그가 판매용으로 자기 거처에 보관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대부분 ‘최후의 심판’ 그림에는 죄를 판정하는 저울을 든 천사 성 미카엘(st. Michael)이 등장한다. 15세기 화가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Rogier van der Weyden)이 그린 <최후의 심판>을 보자.
예수의 발아래, 흰색의 긴 옷을 입은 성 미카엘이 심판 저울대에 인간을 올려놓고 영혼의 무게를 저울질을 하고 있다. 올라간 쪽의 인간은 천국으로, 내려간 쪽의 인간은 곧 지옥으로 향할 것이다.
<저울질하는 여인>의 저울대는 고요하게 평행을 유지하고 있다. 베르메르는 구도, 빛, 색을 통해 평범한 저울질 모습에 신중함을 넘어 경건함까지 부여했다.
여성의 손과 저울의 거리 그리고 균형 잡힌 중앙 배치 등, 화가의 치밀한 구성은 감상자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소실점으로 이끈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하면 이상한 점이 보인다. 저울 접시 위에 아무것도 올려져 있지 않다.
이 작품의 또 다른 제목은 <균형을 잡고 있는 여인(Woman Holding a Balance)>이다. 그녀가 애써 균형을 잡으려고 하는 저울 접시 위의 보이지 않는 그것은 무엇일까?
허영이나 탐욕처럼 자신만이 알고 있는 내면의 죄에 무게를 스스로 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탁자 위에는 작은 상자가 열려있다. 그 주변에는 진주 목걸이, 금화와 은화 등 귀중품들이 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금은보화는 세속적인 부귀영화를 의미하는 도상이다. 또한 인간 삶의 헛됨 또는 공허함을 상징하는 바니타스(Vanitas)다. 이것은 고전 미술에서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많은 화가가 즐겨 쓰는 메타포이다.
인간들이 살아있는 동안 열심히 모아둔 지상의 보물들이 오늘도 눈부시게 빛을 내고 있다. 하지만 죽은 후 심판 날에는 그런 물질들이 아무런 가치가 없음을 '빈 저울'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베르메르의 뛰어난 구성과 조명은 번쩍이는 물질들의 무상함과 '심판의 날은 반드시 닥쳐온다'는 기독교적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하고 있다.
2편 '가족의 생계를 위해'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