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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이 Jun 20. 2018

트랙 밖으로 나가려면

의심을 품다






어제저녁 날씨가 꽤 시원해 당신과 남산타워가 보이는 조그마한 카페 옥상에 앉아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죠. 해가 아주 많이 길어져 7시가 넘어서도 세상이 환했지요. 덕분에 아주 아주 오랜만에 환함에서 어둠으로 가는 하늘을 볼 수 있었어요. 모기에 좀 뜯기긴 했지만 말이에요. 



나는 원하는 일을 시작하고 싶은데 조금 늦은 것 같아 망설이고 있다고 말했죠.     

당신은 말했어요.

"트랙 밖에 있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아요.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에 무한한 상상력을 펼쳐 공포감을 가져요. 그래서 트랙 밖으로 떨어지면 큰일이 날 것 같죠. 교육의 주목적이 그런 거 같아요. 

'트랙을 따라가세요.' 

빨리 가는 사람은 더 밀어주죠. 그리고 뒤쳐진 사람에게 말하죠. 

'저 사람 부럽죠? 어서 노력하세요. 별로 부럽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낙오자가 될 거예요. 트랙 밖이 얼마나 무서운 줄 아나요.' 

부러워해야 한다고 말하죠. 

'빨리 가면 뭐가 좋은데요?'

 만약 용기 내서 물어본다면 

'빨리 가면 다들 부러워하잖아요. 그게 좋은 거죠.' 

'저는 사람들이 절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는데요?' 

'아마 겪어보지 못해서 모를 거예요. 아무도 관심 없고 무시받는 일이 얼마나 초라한 줄. 트랙 밖으로 나가면 그렇게 될 거예요. 무섭죠? 남들처럼만 따라가도 그럴 일은 없답니다. 다들 도와줄 거예요. 밖으로 나가면 도와줄 사람도 이해해 줄 사람도 없어요.' 

트랙 밖으로 뛰어 나가려 하면 정작 겪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더 말려요. 밖에 있는 사람들 큰일이라고. 막상 나가보면 미치게 좋은 건 아니더라도 그렇게 큰일도 아니죠. 거기도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나는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창문을 활짝 열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생각했어요.

내가 왜 트랙을 따라가려 했을까? 다른 사람 말이 더 맞는 것 같을까 궁금해서 뇌에 관한 과학책을 펼쳤어요. 

잘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가려면 매 단계마다 잘 가고 있나 점검이 필요한 듯했어요. 딱 발 내딛는 만큼만 보이니까 확신을 가질 수도 없고. 매 단계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만큼 번거로운 것도 없지요. 뇌가 그런 번거로움 때문에 최대한 익숙한 걸 고르는 식으로 진화했대요. 수렵 채집하던 시절에는 남들이 먹지 않는 것을 먹으면 독이 있어 죽을 수 있고 남들이 가지 않는 곳을 가면 위험한 동물을 만나서 죽을 수 있으니까 그랬다네요. 또 살아오면서 쌓인 경험을 가지고 판단한대요. 노란 가로등 아래에서 흰 눈을 보면 노란색으로 보일 텐데 그냥 흰색이라고 바로 판단하는 것처럼 요. 눈이 노란색이네? 아 조명 때문이구나. 이렇게 생각하는데 에너지가 들어서 그걸 줄이느라 그런다는군요. 그래서 남들 하는 대로 해야 한다고 자동으로 보정이 되어 있었나 봐요. 사실 나는 노란색인데 다들 흰색이라고 하니까 흰색이구나. 어딘가 이상하지만 다들 그러니까 맞나 보다 그러는 거죠. 트랙 밖으로 나가면 내 진짜 색을 알아 봐 줄 수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곳을 찾아다니려면 일단은 의문을 제기해야겠죠. 그리고 그걸 무시하지 말 것. 귀찮아하지 말 것. 나는 노란색인 것 같은데 다들 흰색이라고 그러네. 아닌 것 같다. 다른 곳으로 가볼까 이런 마음을 항상 가져야 하죠. 그런데 뇌가 굉장히 게으르거든요. 자꾸 이걸 귀찮아해요. 정신 놓으면 그냥 사는 대로 살게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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