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6일의 일기
고속버스를 타고 할머니 댁에 가는 길에 글쓰기 수업 마지막 피드백 댓글을 읽었다. 3개의 글에 달려 있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그 댓글들에는 꾸준함이라는 단어가 다 포함돼 있었다. 제 발 저린 사람처럼 과한 짜증이 밀려왔다. 다른 사람 글에 하나라도 그런 비슷한 내용이 있는지 대충 훑었다. 시인이 그때 그 단어에 꽂혀서 남발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없었다. 이 놈이 어떻게 알았지. 내가 꾸준하지 못한 걸. 시인은 내 약점을 지적한 죄로 내 마음속에서 이 놈으로 격하되었다. 그 댓글을 멀미가 날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약점을 찔려 허무하게 고꾸라져 저를 공격한 사람을 노려보듯이 글을 노려봤다. 차라리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글 자체에 대해 수정사항을 얘기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최근 3년 사이에 퇴사하고 싶은 병에 걸린 나는 퇴사하라는 말을 듣기 위해 각각 다른 점쟁이를 두 번이나 찾아갔었다. 그 둘 다 내가 자리에 채 앉기도 전에 나를 보고 게으르다 말했다. 첫 번째는 오는 사람마다 하는 소리겠지 치부했고 두 번째에는 내 얼굴이 게으르게 생겼나? 의문이 생겼다. 얼굴도 모자라 글에도 내 게으름이 묻어난 걸까.
처음에는 노려보다가 선생님께 혼난 사람처럼 기가 죽었다. 의도를 찾으려 머리를 굴리고 내 글을 읽고 댓글을 읽고 또 읽고 다른 사람 글도 읽었지만 그냥 그게 끝이지 뭔 의도 인지 직접 찾아가 묻지 않는 이상 어떻게 알 것 인가. 시인은 그냥 단순하고 자명한 진리를 얘기한 것인데 내가 과하게 찔린 거겠지. 발광하던 마음도 한숨 자고 허리가 아픈 것 같아 걱정을 하고 엄마, 아빠를 터미널에서 만나고 김밥 두 줄을 우적 거리며 씹어 먹고 멀미를 하고 할머니 댁에 도착하는 과정에서 다 흩어졌다.
올라오는 길에 책을 읽다가 누워서 폰을 만지다 길을 걸어가다가 드문드문 흩어졌던 마음들이 낙엽처럼 날아다니다 따끔하며 내 뺨을 스쳤다. 늘 조건은 꾸준함이다. 뭘 하든지. 나는 한 번도 꾸준해 본 적이 없었다. 돌아보니 언제나 그게 내 약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공부에 관해서는 엄마도 선생님도 다들 내가 좀 더 꾸준했으면 하고 바랐다. 고1 때 담임선생님은 말했다. 1학년 끝날 무렵이었던가 나는 늘 시험 때 2주 정도만 벼락치기 공부를 하고 있었고 모의고사 성적이 초반에 비해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꾸준히 공부하는 다른 친구와 내 공부하는 스타일을 비교하면서 지금은 네가 성적이 좋지만 조금 있으면 친구가 훨씬 더 성적이 좋을 거라고 너는 꾸준하지 못하다 말했다. 그냥 글로 쓰니 좀 차가워 보이지만 선생님의 진심과 안타까운 표정에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때 마냥 들떠 있을 때였는지, 진짜 그냥 공부가 하기 싫었는지,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는지, 금방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정작 당시에는 선생님이 내 걱정을 하시는구나 하고는 금방 잊었는데 그 장면이 두고두고 지금까지 생각하는 장면이 될지 그 순간에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그게 최초의 지적이었다. 그런데 한 번 눈에 띄면 아무리 작은 허점이라도 너무나 잘 보이는 것처럼 그 후 계속 내 약점으로 따라다녔다. 나도 모르게 자꾸 곱씹게 된다. 무릎에 난 딱지가 어색해 자꾸 들여다보고 만지면 더 덧나듯 점점 더 의식하게 된다. 전공은 포기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도 꾸준하지 못했음이 결과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대학원 공부를 그만뒀을 때도, 수영을 하다가 포기했을 때도 꾸준하지 못했음을 반성했다. 그러다 보니 이젠 뭔가를 시작할 때 이미 내가 꾸준하지 못해 포기하게 되고 그 일을 싫어하게 될까 지레 겁을 먹고 망설이게 되었다. 꾸준하다는 게 뭘까. 대체 어떻게 하는 걸까. 그냥 나도 모르는 순간에 하고 있는 것. 그게 꾸준함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