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얻어 맞은 날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

by 알이





말에 얻어맞을 때, 그 말은 하루 종일 머릿속을 따라다닌다. 나에게 왜 그런 말을 해서 씩씩하게 잘 살고 있는 내 평화를 깨뜨리나 그를 원망한다. 타인을 향한 원망도 잠시 화살의 방향은 금방 나에게로 돌아간다. 이렇게 말했어야 됐는데, 지금이라도 말할까, 아니 지금은 너무 늦었어, 나중에 또 그렇게 말하면 멋지게 한방 날려줘야지 생각해도 전혀 통쾌하지 않다. 오히려 다음 순서는 스스로를 비난할 시간이다. 그때 왜 그렇게 말하지 못했을까. 멍청하게. 뭐가 무서워서? 착해 보이고 싶은 건가? 상대가 상처 받을까 봐? 그 사람이 상처 받는 건 안 되고 내가 받는 건 괜찮나? 온갖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누가 들어도 심한 말일 경우도 있지만 애매한 말에 상처 받을 때 머릿속은 훨씬 더 복잡해진다. 그 말을 대체 무슨 뜻으로 한 걸까? 농담인가? 아니면 나를 상처 주려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역시 답은 알 수 없다. 사실 머리로는 알고 있긴 하다. 그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뱉은 말이고 내가 내 상황과 감정에 엮어 상처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아마 상대방은 그런 말을 했는지 기억조차 못할 거라는 것을. 그렇다면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까? 나를 상처 줄 의도가 아니었다고 확신해도? 나를 상처 줄 목적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할 목적으로 한 말이라고 해도? 아니다. 오히려 그 사람은 기억도 못하는 말로 혼자 며칠 동안 끙끙거리고 있다는 생각에 더 초라해진다. 그러니 내가 이러해서 상처를 받았다고 침착하게 말할 기회를 얻었다고 해도 기억도 못하는 상대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머릿속으로 수도 없이 반복하며 생각해 놓은 할 말들도 갈 길을 잃어버리고 뱅뱅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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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우 대부분 가까운 사이일 경우가 많다는 것이 더 치명적이다. 하루의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는 직장동료이거나, 심지어 가족이거나. 도망가고 싶지만 쉽게 그 사람과 멀어질 수 없는 현실이 더 좌절하게 만든다. 한 번 보고 말 사람이 같은 말을 했다면 이렇게까지 상처 받고 곱씹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세탁기를 돌려놓고 설거지를 하면서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자려고 누워서도 자꾸만 그 자리, 그 상황으로 다시 나를 돌려놓는다. 그리고 또 자책의 반복. 차라리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사라져 버리고 싶다.


결과적으로 그 상황에서 참은 것이, 아니 말을 하지 못한 것이 장기적으로는 내 평판이나 입장에 도움이 됐을지라도 완전히 위로받지 못하는 내 안의 어느 한 구석이 있다. 어느 순간에 나를 우선으로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 상처 받는 나보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볼까 두려워 멈칫했던 나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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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이럴 때 나를 위로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사람인 듯하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하려고 애를 쓰던 어리석은 나와 달리 무조건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을 통해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내 마음을 잘 헤아려주는 친구를 만나 고자질하듯 내가 이런 말을 듣고 상처를 받았다고 징징거리면 친구가 그 사람을 만나 직접 말을 해 준 것처럼 통쾌하고 속이 식는다. 만화 캐릭터처럼 정수리에서 뜨끈뜨끈 올라오던 열이 식는다. 친구도 상처 받은 일을 말한다. 나도 열불 내면서 침을 튀기면서 알지도 못하는 그 사람을 친구 대신 혼내준다. 어쩌면 나도 어딘가에서는 나도 모르게 혼나고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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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혼자 사는 거라고 맨날 노래 부르고 다니는 나지만 이런 과정을 겪을 때마다 깨닫는다. 말로 상처 받는 일은 혼자서 상처 받을 수도 없지만 또 혼자 치유할 수도 없는 것 같다. 속으로 수없이 스스로에게 반복하며 나를 위로하려 해도 소용없던 말이 똑같은 말이라도 나를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사람에게 들으면 힘이 되고 내 마음 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너무 익숙해서 잊고 지내던 내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한 번 더 깨닫게 된다. 굳이 나를 아껴주지 않는 사람의 인정을 애써 아등바등 받으려 할 필요 없고 내 옆에 서 있어 주는 사람들에게 좀 더 마음을 쓰겠다고.

그 과정을 지나 시간이 물처럼 흐르고 나면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진다.

사람 때문에 또 아프겠지만 또 사람 때문에 나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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