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이 Nov 26. 2019

말에 얻어 맞은 날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





말에 얻어맞을 때, 그 말은 하루 종일 머릿속을 따라다닌다. 나에게 왜 그런 말을 해서 씩씩하게 잘 살고 있는 내 평화를 깨뜨리나 그를 원망한다. 타인을 향한 원망도 잠시 화살의 방향은 금방 나에게로 돌아간다. 이렇게 말했어야 됐는데, 지금이라도 말할까, 아니 지금은 너무 늦었어, 나중에 또 그렇게 말하면 멋지게 한방 날려줘야지 생각해도 전혀 통쾌하지 않다. 오히려 다음 순서는 스스로를 비난할 시간이다. 그때 왜 그렇게 말하지 못했을까. 멍청하게. 뭐가 무서워서? 착해 보이고 싶은 건가? 상대가 상처 받을까 봐? 그 사람이 상처 받는 건 안 되고 내가 받는 건 괜찮나? 온갖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누가 들어도 심한 말일 경우도 있지만 애매한 말에 상처 받을 때 머릿속은 훨씬 더 복잡해진다. 그 말을 대체 무슨 뜻으로 한 걸까? 농담인가? 아니면 나를 상처 주려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역시 답은 알 수 없다. 사실 머리로는 알고 있긴 하다. 그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뱉은 말이고 내가 내 상황과 감정에 엮어 상처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아마 상대방은 그런 말을 했는지 기억조차 못할 거라는 것을. 그렇다면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까? 나를 상처 줄 의도가 아니었다고 확신해도? 나를 상처 줄 목적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할 목적으로 한 말이라고 해도? 아니다. 오히려 그 사람은 기억도 못하는 말로 혼자 며칠 동안 끙끙거리고 있다는 생각에 더 초라해진다. 그러니 내가 이러해서 상처를 받았다고 침착하게 말할 기회를 얻었다고 해도 기억도 못하는 상대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머릿속으로 수도 없이 반복하며 생각해 놓은 할 말들도 갈 길을 잃어버리고 뱅뱅 맴돈다. 



이런 경우 대부분 가까운 사이일 경우가 많다는 것이 더 치명적이다. 하루의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는 직장동료이거나, 심지어 가족이거나. 도망가고 싶지만 쉽게 그 사람과 멀어질 수 없는 현실이 더 좌절하게 만든다. 한 번 보고 말 사람이 같은 말을 했다면 이렇게까지 상처 받고 곱씹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세탁기를 돌려놓고 설거지를 하면서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자려고 누워서도 자꾸만 그 자리, 그 상황으로 다시 나를 돌려놓는다. 그리고 또 자책의 반복. 차라리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사라져 버리고 싶다. 


결과적으로 그 상황에서 참은 것이, 아니 말을 하지 못한 것이 장기적으로는 내 평판이나 입장에 도움이 됐을지라도 완전히 위로받지 못하는 내 안의 어느 한 구석이 있다. 어느 순간에 나를 우선으로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 상처 받는 나보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볼까 두려워 멈칫했던 나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이럴 때 나를 위로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사람인 듯하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하려고 애를 쓰던 어리석은 나와 달리 무조건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을 통해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내 마음을 잘 헤아려주는 친구를 만나 고자질하듯 내가 이런 말을 듣고 상처를 받았다고 징징거리면 친구가 그 사람을 만나 직접 말을 해 준 것처럼 통쾌하고 속이 식는다. 만화 캐릭터처럼 정수리에서 뜨끈뜨끈 올라오던 열이 식는다. 친구도 상처 받은 일을 말한다. 나도 열불 내면서 침을 튀기면서 알지도 못하는 그 사람을 친구 대신 혼내준다. 어쩌면 나도 어딘가에서는 나도 모르게 혼나고 있을지 모르겠다.


 

세상 혼자 사는 거라고 맨날 노래 부르고 다니는 나지만 이런 과정을 겪을 때마다 깨닫는다. 말로 상처 받는 일은 혼자서 상처 받을 수도 없지만 또 혼자 치유할 수도 없는 것 같다. 속으로 수없이 스스로에게 반복하며 나를 위로하려 해도 소용없던 말이 똑같은 말이라도 나를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사람에게 들으면 힘이 되고 내 마음 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너무 익숙해서 잊고 지내던 내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한 번 더 깨닫게 된다. 굳이 나를 아껴주지 않는 사람의 인정을 애써 아등바등 받으려 할 필요 없고 내 옆에 서 있어 주는 사람들에게 좀 더 마음을 쓰겠다고. 

그 과정을 지나 시간이 물처럼 흐르고 나면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진다. 

사람 때문에 또 아프겠지만 또 사람 때문에 나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꿈에서 만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