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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이 Nov 21. 2019

꿈에서 만나자.

불안과 불행을 헤매도 





그젯밤 짧게 자고 계속 깨기를 반복했다. 바람이 많이 불었다. 여름에 열어 놓은 보일러실 창문을 지금까지 닫을 생각을 못했더니 그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 오래된 보일러실 문이 계속 덜컹거렸다. 그 소리가 꼭 누가 문을 열어달라고 덜컹거리는 소리인 것만 같았다. 그래도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아무도 없는 방에 영원히 혼자 있을 것만 같다는 공상이 더 무서웠다. 어린 내가 생각했던 미래와 너무 다른 지금의 내가 무서웠고 또 지금보다 더 다를 미래의 내가 더 무서웠다. 어둠 속에 누워 있으면 눈을 떠도 감아도 어둠뿐이니 시각적인 자극으로 덮어두고 외면하고 있던 것들이 더 잘 보인다. 피곤에 기억이 끊기듯 잠들어도 그 잠을 끝끝내 깨워 많은 것들로 덮어뒀던 불안을 보라고 한다. 


불안이 찾아오던 수많은 밤이 지나간 끝에 이제는 대처 요령이 생겼나 보다. 그냥 얻어맞는 요령. 불안을 본다. 예전에는 불안을 피해 어서어서 잠들라고 나를 다그쳤다. 등 뒤에 있는 불안은 점점 커지는 것 같았고 잠은 아무리 불러도 오지 않았다. 불안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미래를 엉망으로 그렸다. 현재에 가까운 언젠가 과거에 내가 봤던 최악의 미래 그게 바로 지금이라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그런대로 살만했다. 그 와중에 행복할 때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최악의 미래에 와 있는 내가 과거에서 불행을 예감하며 불안에 떨고 있는 나보다 행복한 날이 더 많은 셈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저 마음껏 불안해 본다. 최악의 미래까지 다녀온다. 그러는 동안 다시 잠이 들었다.



셀 수도 없는 많은 꿈들이 촘촘하게 지나갔다. 문이 덜컹거리는 텅 빈 방의 현실과 달리 꿈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했다. 그중에는 너도 있었고 희붐하게 밝아오는 새벽녘쯤 다시 깨었을 때는 현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너뿐이었다. 꿈에서 우리는 현실의 공간 속에 과거의 감정을 가지고 서로를 보고 있었다. 그게 어쩌면 내가 바라는 것이고 그래서 꿈에 나온 것이겠지.  우리는 익숙했고 그저 손을 잡고 웃고 있었다. 그래. 네가 있던 세상은 이런 공기를 가지고 있었지. 같은 공간임에도 혼자 몇 번이고 깨서 바라보던 그 텅 빈 방과는 정반대의 색과 온도의 공간. 햇빛이 가득 차 공기마저도 노란빛으로 보이는 따뜻한 방. 너를 떠나서는 한 번도 느낄 수 없던 익숙한 안정감. 


그 감정은 너무도 생생해서 꿈에서 깬 직후에는 도저히 과거의 감정이라 선뜻 말하기 힘들었다. 눈도 제대로 못 뜬 상태로 너무도 네가 반가웠다. 할 수만 있다면 그 꿈속의 그 안정감 안으로 기어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공기가 너무도 달랐다. 차가웠고 어두웠고 시끄러웠다. 나는 실눈을 떠서 흑백의 색마저도 바래 푸르스름한 빛을 내는 옛날 사진 같은 빛깔의 건너편 벽을 응시했다. 거기 걸려있는 내가 죽도록 입고 다니는 소매 다 떨어진 코트가 그건 과거라고, 지금 여기는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 코끝에도 외풍이 느껴지는 현실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또 다행이기도 했다.


날이 다 밝아서야 겨우 일어났다. 공기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햇빛이 가득한 방이 보였다. 지난밤 불안과 불행에 빠져 죽을 것 같던 현실의 나는 어디에도 없었다. 익숙한 안정감에 싸여 있던 꿈속의 나 또한 저 먼 옛날에 있었다. 그리고 너도 먼 옛날에 있었다. 이불 밖으로 나와 찬물로 세수를 하면서 어쩌면 차가운 현실의 나를 보호해 줄 방어기제로 꿈속에 따뜻한 네가 나온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과거 중에 가장 따뜻한 순간을 꺼냈던 건지도 모르겠다고. 그래서 고마워하고 있고 또 조금 늦게 알게 되어서 여전히 미안해하고 있다. 현실의 공간에서 현실의 감정을 가지고 만날 수는 없으니, 꿈에서만 너를 볼 수 있으니, 다시는 못 가질 익숙한 안정감을 꿈속에서만 느낄 수 있으니 우리는 또 꿈에서 만나자. 따뜻한 꿈속에서 너를 만날 수 있으면 불안과 불행에 풍덩 빠져서 밤새 헤매더라도 이제는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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