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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이 Nov 18. 2019

열심히 세계의 맹점

열심히 - 어떤 일에 온 정성을 다하여 골똘하게.




학생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열심히 해라. 이 말이 아닐까? 부모님이나 연장자가 메시지 같은 걸 전할 때도 마무리로 할 말이 마땅치 않으면 열심히 해라 또는 파이팅!으로 끝내곤 하니까. 나 역시 고등학생 때까지는 그 말이 거슬리지도 않았고 당연한 소리로 들었다. 대학에 와서는 차츰 그 말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대학만 가면 내 마음대로 하고 살 거라고 다짐했고 내 멋대로 하려고 하는데 여전히 열심히 하라는 말을 듣다니. 단지 그래서 그 말에 짜증이 났다. 하지만 여전히 열심히의 세계 속에 속해 있는 나는 그 말에 의문을 가지지는 못했다. 그때의 나는 열심히의 마법이 통하는 평탄한 세계 안에서 살고 있었던 것 같다. 열심히하면 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는 세상. 중력이 있는 곳에 사는 이가 중력을 새삼 매번 느끼고 깨닫지 못하듯 당연한 법칙처럼 생각했고 그래서 그런 말들을 들어도 어색하다거나 이상하다는 생각은 못했다. 단지 열심히 해야 하는데 하기 싫다 그 정도 생각만 했을 뿐.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나는 그 세계가 전부인 듯이 살았다. 열심히 하면 다 잘 될 거라고 생각했고 열심히 하지 않아서 못한 것이고 망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가 모든 일을 열심히 한 것은 아니었고 뭔가 잘 되지 않았을 때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 단순했고 명쾌했다. 다음에 열심히 하면 되니까. 실패에도 미리 준비한 핑계가 있어 좌절이 크지 않았다. 심지어 미리 열심히 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열심히 했지만 잘 안 되는 사건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아무리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 이런 결과가 나온 거라고 해도 전혀 먹히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내 능력껏 열심히 최선을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처참하게 망했다. 그제야 의문이 생겼다.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니 모든 게 이상한 말이었다. 열심히 하는 것과 원하는 대로 잘 되는 것은 필요충분조건이 아닌데 왜 진리마냥 생각했던 건지 이상했다. 무엇을 열심히, 왜 열심히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른 채로 그냥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내가 대학생일 때 전화통화를 하면 늘 끝인사를 그래. 열심히 해라-로 끝냈었다. 그 말에 의문이 들고 나니 엄마가 언제까지 할지 궁금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졸업을 하고 취직을 했고 그제야 엄마는 통화를 어떻게 마무리할지 몰라 어색해했다. 그 찰나의 순간에는 엄마가 좀 귀여워 웃었지만 전화를 끊고는 마음 한 구석에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이 생겼다. 취직을 하면 열심히 할 일은 이제 더 이상 없는 걸까?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두루뭉술하게 목적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너무도 당연한 말. 



열심히 세계에 균열이 생기자 너무 쉽게 우주 밖으로 밀려나는 것처럼 무력해진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무서웠다. 방향도 기준도 없이 끝없이 우주를 떠다니는 것처럼. 곧 허무해졌다. 뭘 위해서 열심히 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이어졌다. 아무 방향도 목적도 없이 우주를 떠다니는 파편 같았다.


그래서 실제로 그렇게 살려고 했고 그렇게 사는 건 열심히 사는 것보다 당연하게도 쉬웠다. 애쓰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고 확실히 될 것 같은 것들만 했다. 우주공간으로 둥둥 떠가며 지구를 바라보는 먼지처럼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때로는 대단해 보였고 때로는 열심히의 맹점을 아직 깨닫지 못한 게 아닐까 멋대로 생각했다. 입버릇처럼 열심히 살 필요 없다고 그저 되는 대로 살면 된다고 나에게도 또 다른 이에게도 말했다. 욕심이 없으면 바랄 것도 없고 열심히 할 필요도 없다고. 


그런데 그렇게 떠 다니듯 살다 보니 어쩌면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한 것 같기도 하다. 세뇌당한 듯 영문 모르고 그저 밀려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것, 원하는 방향과 바람을 향해 열심히 사는 세계. 하지만 결과에 상관없이 열심히 하는 세계. 거기에는 나처럼 작은 실패와 상처에 호들갑을 떨다 세상 다 산 사람처럼 좌절한 사람은 없다. 열심히의 맹점을 이미 잘 알고 결과에 아파하더라도 다시 원하는 바를 위해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아직 나는 그 세계로 들어가지는 못한 것 같다. 멀리서 바라보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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