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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이 Jan 31. 2020

알 수 없는, 쓸 수 없는 마음

소개로 사람을 만난다는 것





A는 얼마 전 소개로 만난 사람과 성실하게 만나고 있다. 실제로 만난 건 두 번 정도 매일 문자를 주고받고 가끔 전화 통화를 한다. A는 문자를 쓸 때마다, 전화를 끊을 때마다 마음이 살짝 불편하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곧 익숙해질 거라고 그 마음을 외면한다. 언젠가 친구들을 만나 소개로 사람을 만나면 늘 불편하다고 이제 소개받지 말까 봐 하니 친구들은 그러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A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지. A는 마음이 불편할 때마다 친구들과 했던 그 대화를 떠올리며 답장을 쓴다.  



세 번째 만나는 날 약속 장소로 가는 길,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그가 옆으로 휙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거의 다 왔기에 A는 그를 굳이 부르지 않고 비스듬히 몇 걸음 뒤에서 그의 뒤통수를 보며 따라 걸었다. 부지런히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도대체 저 사람은 내가 어떤 인간 인지나 알고 일주일 동안 성실하게 연락을 주고 또 만나자고 하고 저렇게 바쁘게 만나러 가고 있는 걸까 싶었다. 그것과는 별개의 감정도 있었다. 며칠 째 야근했고 집은 엉망진창인데 마치 회사 회식처럼 성실하고 열심히 대화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피곤했다.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일처럼 바라보게 한다는 것도 모른 척할 수는 없어서 누가 강제로 떠민 것도 아니고 내가 번호도 줬고 연락도 꾸준히 했는데 왜 마치 억지로 끌려가는 것 마냥 생각하는지 그것도 어이가 없었다. 얼마나 더 만날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만나야 편해질까 생각하고 있는데 그가 갑자기 뒤를 돌아 반대방향으로 뛰어가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A는 그가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약속 장소를 떠나야 했고 만나지 않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모른 척 몇 걸음 더 걸어 약속 장소에 도착해 그에게 전화를 했더니 거친 숨을 쉬며 거의 다 왔다고 했다. 아마 길이 익숙하지 않아서 약속 장소를 지나온 것으로 잠시 착각한 모양이었다. 순간 A는 왜 그런 상상을 했을까 아니, 애초부터 그를 왜 부르지 않고 가만히 지켜만 봤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새 그런 생각들은 금세 잊고 그의 이야기에 열심히 호응을 하고 있었다.      



다음날 A는 새벽 기차로 포항으로 여행을 떠났다. 짐을 싸고 짐을 내리고 다시 이동을 하는 사이사이에 어제의 장면들이 끼어들었다. 어떤 감정들은 현실의 장소와 함께 흘러가고 있을 때는 잘 받아들일 수 없다. 늘 보던 공간이 아닌 낯선 곳에 와 보니 어제의 말, 어제의 행동들을 조금씩 다르게 느껴졌다. 남의 일처럼 보니 웃고 싶지 않은 내용에도 웃었고 기분 나빠야 할 말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면 안 된다고 애써 무시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었다. 내 감정보다는 그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대화를 했었다. 그가 무례했던 것은 아니다. 그가 무례하기만 했다면 A도 그렇게까지 예의 있고 성실하게 대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지 몇 마디의 말들이 A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저 미처 몰라 실수했을 수도 있고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예민하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말들을 묻지도, 바로잡지 못하고 그저 웃음으로 때우며 “성격이 차분하신 것 같아요.” “잘 웃어주시네요.” 이런 말들을 칭찬으로 감사하며 듣고 있었다는 것을 숙소 앞 바닷가 방파제에서 낚시하는 사람을 멍하니 보다가 알게 되었다. 


호감이 예상치 못한 곳에 닻을 내리듯 인연이 깨질 것을 예감하는 것 또한 미처 알지 못하는 곳에 닻을 내리는 건지도 모른다. 그 순간에는 눈치가 없는 척 아닌 척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그 지점에서 인연이 끝날 것을 설핏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가 뒤돌아 뛰어가는 것을 보던 순간 모든 것이 느리게 움직이는 듯 보였던 이상한 위화감은 그 예감이 던져준 느낌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A는 생각했다.   

    


그에게서 여행 잘하고 있냐고 조금 전 문자가 왔다. 거기에 답을 해야 했다. 이 답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인연은 계속 이어질 수도 한순간에 끊어질 수도 있다. 모든 인연이 그렇다고는 하지만 소개로 사람을 만나면 유독 인연을 놓기가 얼마나 쉬운 일인지 절절히 깨닫는 순간이 잦다. 아무리 살펴보고 돌아봐도 우리의 인연을 연결해주는 것이 너무도 얇은 선 같은 전화번호 하나로만 연결되어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갑자기 마천루 옥상 난간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뒤로 한 발 내딛으면 탄탄한 땅이지만 반대로 한 발만 내딛으면 허공으로 떨어져 버리는 기분. 그래서 A는 늘 난간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기분을 끝내 줄, 난간 안쪽으로 끌어내려 줄 인연을 바랐다.      


A가 지켜보는 동안 낚시하는 사람은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했다. 그는 낚싯대를 걷어서 채비를 바꾸기도 하고 미끼를 바꾸기도 하는 것 같았다. 그의 표정을 보고 싶었지만 너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A는 문자 내용을 썼다 지웠다 반복했다. 아무리 반복해도 A가 원하는 문장은 써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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