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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이 Feb 18. 2020

잃어버린, 버린 꿈

시린 속으로 잠드는 밤





K는 몇 년 만에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를 같이 하던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다들 비슷한 또래여서 친하게 지냈지만 그중 S와는 말이 잘 통해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밤새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었다. S는 배우를 꿈꾸고 있었고 K는 PD를 꿈꾸고 있었다. 꿈을 향해 노력해야 하는 방향은 조금 달랐지만 상상하는 미래를 서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시간이었다.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학교도 졸업하고 K가 먼저 꿈꾸던 것과는 전혀 다른 회사에 취직하고  S는 여전히 연극을 하면서 만나는 간격이 조금씩 길어졌다. 하지만 K는 늘 S가 궁금했다. 


오랜만에 만난 S는 여전히 해맑게 웃고 있었다. K는 자꾸 물끄러미 그 얼굴을 바라보게 됐다. 요새 뭘 하고 지내는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K는 오랜만에 만난 이가 근황을 묻는 말에 가끔 상처 받거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릴 때가 종종 있었고 그래서 S에게 선뜻 먼저 묻지 못하고 그저 주변 사람들은 잘 지내냐고만 물었다. 대답하는 중에 S는 자연스럽게 취직해서 회사를 다니고 있다고 했다. K는 순간 속에서 뭔가가 쿵하고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혹시나 해서 K는 한 번 더 물었다. "연극은 아예 그만둔 거야?" S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응. 돈을 못 벌잖아." K는 괜히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 또 한 번 물었다. "돈 벌어서 뭐하게?" S는 답했다. "결혼해야지. 차도 사고 넓은 집으로 이사도 하고." K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 가족의 건강에 대해, 적금의 이율에 대해, 여행에 대해 말했다. 그런데 K는 자꾸 마음 한구석이 시렸다. 전에 만났을 때 S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찬란했고 불안정했던 S의 얼굴. 그때 S는 꽤 큰 규모의 뮤지컬 단역 오디션에 합격했다며 K에게 공연을 보러 오라고 했다. 그러면서 목이 상하면 안 된다고 따뜻한 음료를 시켰고 말도 크게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왠지 귀여웠고 주변의 공기까지도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았다.  S의 표정에서 묻어 나오던 설렘은 너무도 싱그러워서 최근까지도 가끔 떠올리면 K의 초라한 현실을 잠시 잊게 해 줄 정도였다. 



여전히 S는 해맑았고 씩씩했고 함께 대화하면 즐거웠지만 빛나지는 않았다. 안정적이었고 조용히 불꽃이 사그라진 재 같았다. 그 꺼진 재를 괜히 들쑤셔서 불꽃을 다시 일으키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꼭 어떤 길로 가야 한다고,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할 만큼 멋진 인생을 살고 있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고, K 역시 불확실한 꿈을 언제까지나 좇기 무서워서 안정에 안정을 찾아 기어가고 있으면서 왜 그런 선택을 했냐고 계속해보지 그러냐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럴 자격 자체가 없었다. 


그리고 S는 행복해 보였고 편안해 보였다. S는 커피 값을 자신이 계산하겠다며 지금까지 자주 얻어먹어서 미안했다고 했다. 그리고 요즘 밥 사주고 커피 사는 재미로 돈을 버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그 말을 듣는데 K는 자꾸 벌판에 서서 날 선 칼바람을 맞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 같았다. 만난 지 3시간쯤 되었을 때 S는 내일 출근해야 하니 일어나자고 했다. 그 말조차 어색하게 느껴졌다.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S를 한 번 안아주고 싶었다. S는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K의 어깨에 이마를 살짝 올리며 몸을 기댔다. K는 S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고 쓰다듬었다. 


 돌아오는 길 K는 멍한 얼굴로 버스 창밖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몇 년 전 수첩에 옮겨 두었던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집에 도착해 오래전 쓰던 수첩들 사이에서 검고 작은 손지갑만 한 수첩 하나를 찾아 꺼냈다.      

선한 싸움은 우리가 간직한 꿈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젊은 시절 우리 내면에 간직한 꿈들이 힘차게 꿈틀댈 때면 우린 용기백배 하지만, 그땐 아직 싸우는 법을 알지 못했지요. 각고의 노력 끝에 그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을 때는 전장에 뛰어들 용기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적대시하게 되고 결국엔 스스로 자신의 가장 큰 적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 자신의 꿈은 유치하다거나, 실행하기 힘들다거나 인생에 대해 몰랐을 때나 꾸는 꿈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말이죠. 선한 싸움을 이끌어갈 용기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꿈을 죽여버리는 겁니다.     

 K는 그 구절을 한 자 한 자 수첩에 늘러 적던 때의 자신을 떠올렸다. 그때 K는 자신 있었다. 누구보다 씩씩했다. 오래도록 꿈을 간직하고 노력하고 계속 꾸준할 자신이 있었다. 그때의 K를 누군가 봤다면 분명 찬란해 보였을 것이 분명했다. 언젠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꿈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지만 그저 버린 것이었다. 다른 이를 탓할 수 있고 세상을 탓할 수 있고 자책을 덜 할 수 있기 때문에 잃어버린 것이라고 생각해야만 했었다. 하지만 사실 꿈을 뺏긴 것도 아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딘가에 흘린 것도 아니고 그저 어느 날 꿈을 버렸기 때문에 지금을 살고 있는 것이었다. 어차피 돈을 많이 벌지 못할 거라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겠다던 어린 날의 다짐은 수첩처럼 창고에 처박힌 지 오래되었다. 


S를 보며 속이 시렸던 건 어쩌면 S의 모습에서 몇 년 전 자신의 모습을 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고 K는 생각했다. 말로는 쉽게 떠들고 다녔다. 하고 싶은 일에 나이가 어디 있어. 돈은 하고 싶은 것 하면 따라온댔어. 자기 계발서에 흔하게 나오는 내용처럼 말했다.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살려한다고, 그렇게 살고 있다고 멋대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친구들이 심지어 후배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찾고 결혼을 하는 동안 K는 그 자리에 계속 있었다. 진심을 다해 축하해주고 돌아온 좁고 어두운 방. 잠들기 직전 누군가 귓가에 정신 차리라며 속삭이는 것 같았고 K는 견딜 수 없는 초라함과 속 시림을 느꼈다. 아무리 씩씩한 척해봐도 속은 따뜻해지지 않았다.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은 어린 날의 치기였다. 


초라함과 속 시림을 견디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음 밖에는 잘해 줄 수 없다는 현실을 견디고, 몇 년이 지나도 몇십 년이 지나도 계속 제자리에 있을 수도 있다는 불안을 견디고, 다른 이들은 하나 둘 그 자리를 떠나가는 외로움을 견디면서 좇아야 한다는 사실은 자기 계발서에는 나오지 않았다. 그저 걷고 걷고 걷고 또 걸으면 언젠가 도달할 수 있다는 희망만이 가득할 뿐이다. 그건 몇 만 km 떨어진 목적지를 가는 방법만을 저장해둔 내비게이션 같은 것이다. 가는 길에 다칠 수도 짐을 잃어버릴 수도 강도를 만날 수도 길을 잃어버릴 수도 영영 그곳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하나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그래서 K는 견딜 수 없는 불안과 속 시림을 피해 남들처럼 사는 척하기로 결심했고 드라마를 보며 느낄 수 없는 감정을 체험해보듯 S가 그렇게 사는 걸 보면서 대리만족이라도 느끼려고 했던 것 같았다. 



S의 말대로 다음날 출근을 위해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아 아무 동영상이 보던 K는 배우 지망생인 어떤 청년이 고민을 이야기하는 영상을 보게 됐다. 청년은 계속 도전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 된다고 이제 나이도 많아서 집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고민을 들은 상대방은 계속해야 할 것 같다고 물론 그로 인해 너무 힘들고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해야 하는지 장담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계속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청년은 어쩌면 그 말이 듣고 싶어서 온 것 같다고 했다. 영상이 올라온 날짜는 7년 전. K는 문득 청년이 지금 무슨 일을 하며 살고 있을까 궁금했다. 그 청년은 아직도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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