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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이 Aug 19. 2020

나의 시작에게 - 1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하고, 처음으로 미워한 사람






작년 가을 친척동생 A가 며칠 집에 와 있었다. A는 고등학생 때부터 엄마와 사이가 아주 좋지 않았다. 집에서 나와 근처에 있던 할머니 댁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졸업하고는 아예 집과 연락을 끊고 다른 곳에서 살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A는 엄마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과는 연락을 하고 지냈고 나도 A가 원래 살던 곳을 떠나서 서울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친척이니까 A의 엄마도 나와 친척이고 명절마다 6촌까지 전부 모이는 우리 집 특성상 A의 엄마와 나도 자주 볼 수밖에 없었다. 친척모임에서 만나면 나에게 A를 만나 보라고 했다. 나의 엄마도 가끔 A에게 연락해보라고 했다. 잘 지내는지, 엄마와 화해할 수 있게 얘기해보라고. 어릴 때부터 친척 모임이 잦아서 A와 자주 만났고 나이 차이가 꽤 났지만 잘 지냈기 때문에 아마 그런 말들을 했을 것이다. A가 잘 지내는지는 궁금했지만 엄마와 화해하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릴 때부터 A와 A의 엄마를 봐 왔으니 왜 그렇게 엄마에게 등을 돌리게 됐는지 어렴풋이 이해됐기 때문이었다. 


A의 엄마는 ‘극성맞다’라는 단어의 전형 같은 사람이었다. A는 중학교 때까지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다. A에게는 공부에 대해 계속 부담을 줬고 그에 비해 동생에게는 무조건적인 애정을 줬다. 1년에 3~4번 보는 내가 느낄 정도였으니 A가 사춘기 시절 느껴야 했던 스트레스는 내가 본 것보다 클 것이 분명했다. A의 엄마에게는 굳이 내 의견을 말하지 않고 알겠다고 했고 나의 엄마와 얘기를 하다가는 엄마라고 꼭 잘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A가 마음이 내키면 연락하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 그렇게 말했다. 엄마는 그래도...라고 말끝을 흐렸지만 더 말하지는 않았다. 


몇 번 망설이다가 A에게 연락을 했다. A는 아주 반가워하며 만나자고 했다. 고등학생 때 이후로 보지 못했으니 어색하지 않을까 할 말이 없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굳이 엄마 얘기를 꺼내지 않고도 할 말이 많았다. A는 친구와 같이 살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사실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걱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성형수술도 좀 하고 싶고 조금 더 좋은 자취방으로 이사도 하고 고양이도 키우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고 했다. 엄마 이야기는 꺼낼 생각도 없었지만 더더욱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주 보자는 말로 그 날 만남을 마무리했다. A는 얼마 뒤 밤에 차사고가 났다. 응급실에 실려 갔고 같이 있던 친구들 중 누군가가 A의 엄마에게 연락한 것 같았다. A는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엄마에게 왜 왔냐고 나는 엄마 없다고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A의 엄마는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A의 엄마는 그 뒤로 A에게 연락하지 않았고 나에게 만나보라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궁금했다. 굳이 잘 지낼 필요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그런 극적인 순간까지도 엄마를 미워할 수 있을까? 내가 절대 헤아리지 못할 감정이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르면서 A는 몸과 마음이 지쳐버렸다. 사기를 당하고 몸이 많이 약해져서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가 되었다. 그 당시 A는 혼자 살고 있었는데 도저히 혼자 있기가 힘들어서 결국 아빠에게 도움을 청했고 집에서 쉬면서 건강을 회복했다. 그러고 나니 다시 서울로 돌아오고 싶어서 취업준비를 했고 서울로 면접을 보러 오게 되면서 우리 집에서 며칠 묵게 된 것이었다. A가 오기 전 A의 엄마는 내게 전화를 했다. A가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했으며 남들은 취업도 안 된다는데 금방 결과도 나와서 이렇게 면접을 보니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겠다고 한참 자랑을 했다. 대체 용건이 뭐지 자랑인가 어리둥절할 즈음 A의 엄마는 A가 아직은 혼자 있기 힘들어할 것 같으니까 같이 지내는 동안 서울에서 살면 힘들다고 너도 힘들어서 내려갈까 생각 중이라고 얘기 좀 해 달라고 했다. A가 서울에 있다가 정서적으로 불안정해질까 걱정된다는 말과 함께. 이번에도 알겠다고만 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살짝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냥 내가 하고 싶지 않은 말을 해달라고 해서 기분이 이상한 것이겠거니 했다. 


A가 집에 왔고 잠들기 전에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마지막으로 만난 것도 몇 년 전이었고 그 사이에 A에게 너무 많은 일이 있었으니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엄마라고 꾹 참고 상처 받는 말을 다 듣고 그럴 필요 없어. 그리고 엄마한테 미안해할 필요 없다. 꼭 엄마랑 사이가 좋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A는 답했다. 사실 이제 엄마에게는 별로 쌓인 것도 없다고 맨날 짜증내고 마음대로 해서 오히려 살짝 미안할 때도 있다고.


A의 대답을 듣는데 비로소 묘한 감정의 실체를 살짝 느꼈다. A의 엄마의 말은 사실 내가 엄마에게 듣고 싶었던 말이었고 내가 A에게 했던 말은 사실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던 것이다. 고민에 대해 충고하거나 해답을 내놓는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상대의 정답처럼 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그래서 고민을 들을 때 해답을 말해줄 필요도 없고 들어주기만 해도 된다는 내용의 심리학 책을 읽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래. 그건 사실 내가 엄마에게 하고 싶은 것들이었던 것 같다. 소리 지르고 떼쓰고 화내는 것. A의 나이을 때 내 힘듦을, 취업 준비하는 동안 있었던 힘들었음을 알아 달라고 징징 거리는 것. 나도 그때 힘들었는데...... 왜 그렇게 꾸역꾸역 엄마에게 숨겼을까. 나도 칭찬받고 싶다. 그런 감정들. 정말 난감했다. 나는 3살도 10살도 아닌 30살도 넘었고 엄마에게 징징거릴 나이가 아니라 징징거릴 딸이 있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인데 이제 와서 내가 하고 싶은 게 엄마에게 징징거리는 거라니. 내 감정을 똑바로 볼 수도 없고 보고 싶지도 않았다. 딱히 인생에 별로 좋은 일이 없어서 징징거리고 싶나 보다 감정들을 넘겨보려고 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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