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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이 Sep 14. 2020

나의 시작에게 - 3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하고, 처음으로 미워한 사람






시간은 착실히 흘러서 아침이 되었고 나는 방바닥을 닦고 있었다. 바닥 닦는 소리만 나는 조용한 방 안에서 내 속은 너무 시끄러웠다. 엄마에게 어제 하지 못한 말들이 속에서 튀어나오려고 난리였다. 이런 와중에 A가 온다고 바닥을 닦고 있는 것조차 엄마 말 잘 들으려고 애쓰는 아이가 하는 행동처럼 느껴졌다. 닦던 걸레를 집어던지고 벽에 기대고 앉았다. 엄마에게 쏟아내려는 화에 더해서 어제 말하지 못하고 꾹꾹 눌러 참으며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나에게도 화가 났다. 튀어나오려는 말들은 어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어제 얘기만 하려 해도 어제 얘기를 지금 왜 하려고 하나 새삼스러운데 하고 싶은 말들은 너무 먼 과거에 있었다. 엄마에게 듣고 싶은 말은 없었다. 하고 싶은 말만 입 속에 가득했다. 진정해 보려고 심호흡을 하니 오히려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밤에는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라고 넘기고 아침에는 아침부터 그러면 안 된다면서 그동안 넘긴 말들이 전혀 사라지지 않고 속에 가득 쌓여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짜고짜 엉엉 울면서 나한테 미안하다고 말하라고 했다. 어제 왜 엄마는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았냐고 그리고 내가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때 왜 나를 고시원에 살게 뒀냐고 소리를 질렀다. 나조차도 이해가 되지 않으니 엄마는 정말 황당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갑자기 왜 그러냐고 묻다가 내가 엄마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쏟아 내고 싶은 말만 있다는 걸 느꼈는지 엄마는 내 얘기를 들으며 엄마의 입장에 대해 방어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엄마에게 갑자기 퍼부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고 한참을 더 울고 그대로 주저앉아서 생각했다.



시간이 지난다고 모든 감정이 잊히거나 해결되는 것은 아니구나. 언젠가는 엄마에게 이런 말을 했겠구나. 심지어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나서 친구에게 이 날의 통화를 말하면서 나는 또 울컥했다. 친구는 내 얘기를 듣다 보니 떠오른 일이 있다고 했다. 친구는 외국에 거주하고 있어 잠깐 휴가차 한국에 들어와 있었다. 본가에 쓰지 않는 물건들과 짐을 정리하던 중에 엄마, 아빠가 주고받던 편지를 발견했다. 엄마 아빠는 친구가 아주 어릴 때 유학을 가셨는데 처음에는 아빠가 먼저 떠나 있어서 그 당시 주고받던 편지였다. 처음에는 엄마 아빠의 애틋함이 가득한 편지를 읽으면서 자신은 알지 못하던 시절의 부모님을 엿보는 것 같아 좋았고 엄마 아빠에게 이런 시절도 있었다고 읽어보라고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편지의 내용이 점점 서로 해야 할 일들, 요구할 것들로만 채워졌다. 그러다 엄마가 아빠가 있는 곳을 유학을 가게 되면서 친구는 한국에 외할머니와 지내게 되었고 편지의 주인공은 엄마와 외할머니로 바뀌었다. 


친구는 그 당시가 거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당연히 그때 자신을 두고 유학을 갔던 것에 엄마가 항상 미안해하고 있을 것이고 그때도 그랬을 거라고 아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편지에는 어린 아기였던 친구를 걱정하거나 미안해하는 내용은 거의 없었다. 친구 역시 그 편지는 30년 전 것이고 지금의 엄마와는 사이가 좋고 그 당시가 기억이 없음에도 너무 화가 나고 서운한 감정이 터져서 편지를 들고 엄마에게 가서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기억도 안 날만큼 어릴 때이지만 엄마와 떨어져 있었다는 사실이 자라오는 동안 스스로를 이해하거나 또는 탓할 때 얼마나 많은 비중을 차지했을까. 그렇기 때문에 엄마는 나에게 미안해해야 한다고 당연히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사실은 아니었다는 걸 직접 눈으로 보는 일은 너무 큰 충격이었다. 어떻게 엄마가 그때 나에게 이럴 수 있었냐고 그때 나를 생각하기나 했냐고 아예 잊고 살았던 게 아니냐고. 쏟아붓는 친구의 말에 엄마도 울면서 그때 엄마가 무슨 정신으로 그 시절을 지나왔는지 모르겠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친구도 나도 그때의 엄마를 머리로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었다. 내가 몇 개월에 한 번씩 이사를 다니던 시절에 엄마는 건강이 좋지 않았고 나는 내 사정을 솔직히 말하지도 않았다. 친구도 그때의 엄마가 지금도 집의 도움을 많이 받지 못하는 상태로 유학을 가는 것이 힘든데 그 옛날에 결혼까지 한 상태로 유학을 결정하고 타국에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할 수 있지만 ‘나’의 엄마로 볼 때의 감정은 그렇게 간단하게 침착해지고 정리되지 않았다. 그건 대체 몇 년이나 지났는데 이제 와서 새삼스레 왜 그러냐는 그런 말로는 전혀 진정시킬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때 왜 내 옆에 있어주지 않았는지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는지 자꾸 원망하게 된다. 평소에는 쪼그리고 있는 듯 없는 듯 잘 숨어 있다가 이렇게 건드리는 사건이 생기면 꾹 누른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 펑펑 튀어 오른다. 엄마도 놀랐겠지만 엄마에게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도 하나도 미안하지도 않다는 사실에 나도 놀랐다. 대체 나는 엄마를 갑자기 왜 미워하는 걸까? 갑자기 튀어나온 그 마음을 직면하려니 너무 혼란스러웠다. 엄마는 좋은 사람이었고 우리는 친구 사이 같은 모녀였는데 왜 갑자기 내가 이렇게 엄마를 미워하게 된 걸까 언제부터 엄마를 미워하고 있었을까 되짚어 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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