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이 Jul 03. 2018

흩어지는 마음을

낙엽 같이 전단지 같이




오랜만에 당신이 나오는 꿈을 꾼 것도 같습니다. 설핏 얼굴이 보이는 것도 같았는데 일어나서 아무리 머릿속을 헤집고 뒤집고 엎어 털어보아도 어디에 껴 있는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얼굴 이제 잘 기억이 안 나는 것 같네요. 사진으로 봤던 모습들만 떠오릅니다. 그때도 저는 알아야 했을까요. 이런 좋은 순간들은 절대 다시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절대라고 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주 작은 기대를 마음에 계속 품고 있었기 때문에. 그때 절대 오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면 그 순간순간에 한 발짝 더 가까이 가고 더 많은 말을 하고 더 환하게 웃으려 하고 더 졸랐을까요. 당신은 절대 알 수 없는 이야기들.           


 저는 지금도 제가 손을 내밀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지만 그래서 추억들이 아름답게 포장되어 있을 수 있다는 걸 알지만 문득 한 번씩 당신과 내가 만난 다른 우주가 있어 당신과 내가 그 흔한 연애의 과정을 거쳐 흔하게 헤어져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흔하잖아요. 다들 그렇게 산다고 별 거 없다고 그 흔한 연애들 중 하나가 됐을 거라고. 그래서 지금 다행이기도 하고 못내 아쉽기도 합니다. 그 흔함이 왜 우리에게는 있을 수 없었을까요.      



흔함보다 흔적도 그러잡기 힘든 관계로 남는 걸 선택한 것이 정말로 잘 한 일인지 자꾸 되묻던 날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차라리 결코 되물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잘한 일이라고 되뇝니다. 제가 한 이 선택을. 그 많던 추억들이 이제 바스러지고 있습니다. 제 기억력이 좋지 못한 탓입니다. 당신과 이 추억들을 꺼내어 얼마나 달라졌는지 비교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까요. 그런 날은 없겠죠. 그때부터 한 번도 꺼낸 적 없는 추억들을 시간이 지난다고 꺼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도 소중히 생각해서 내 속으로 집어넣어 꽁꽁 싸 두었을까요. 아무도 모르게. 당신조차도 모르게. 이제 와 꺼내보려 하니 바스러진 가루들만 겨우 남아있습니다. 온전한 마음을 당신께도 조금 보여 드릴 것을 그랬습니다. 당신 것도 조금 보여주셨으면 말도 해보고. 


어떤 날 당신을 향한 마음이 줄어든 것 같아 내 마음에게 서운했던 날이 있었습니다. 이제 그 마음들은 가루가 되어 흩어지고 이만큼의 후회가 남았습니다. 그 후회마저 줄어들고 있음에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흩어 버리면 될 일입니다. 이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이 만큼 없어지겠죠.


시작이 없어 끝도 없는 우리 이야기는 언제 왔는지 모르게 왔다가 갈 때도 언제 가는지 모르게 갈 모양입니다. 저는 세상에 흔하지 않은 실체는 작지만 마음은 크고 오래가는 사랑을 했고 아직도 조금 하고 있습니다. 

조금씩 사라질 사랑을.

책갈피 속에 끼워 두었다 가방 속에 넣어 두었다 바스러져 없어지는 낙엽 같은. 

전봇대에 붙은 비바람에 눈에 햇살에 바람에 서서히 닳고 헤져 없어지는 전단지 같은.     

작가의 이전글 갈림길에 서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