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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이 Jul 05. 2018

당신에게 묻고 싶은 이야기

영화 '컨택트' 주제와 동떨어진 리뷰

*영화 컨택트(원제 arrival)의 주요 내용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컨택트(원제 arrival)를 봤어요. 한 번은 혼자서 또 한 번은 당신과. 줄거리는 미래에서 온 미지의 존재와 소통하는 내용이지만 주인공이 미래를 보게 된 뒤에 나온 결과에 더 마음이 쓰였어요. 주인공은 미지의 존재가 사용하는 언어를 익히면서 미래를 볼 수 있어 되고 그녀의 아이가 10대에 불치병에 걸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를 낳는 선택을 하죠. 내 아이가 미래에 불치병으로 죽게 된다는 것을 알면 나는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인가.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내가 미래를 보게 된 마냥 어떤 선택을 할까 계속 고민했어요. 영화에서도 그녀의 남편은 아내의 선택의 과정을 뒤늦게 알고 아내의 선택에 화가 나 이혼을 선택하니까요.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우리는 뭔가를 가정해서 많은 대화를 나누잖아요. 예를 들면 로또에 당첨된다면 또는 인기 많은 연예인이 된다면 그런 것들요. 그런 것들처럼 가정해보고 싶은 질문이 있었어요.

영화를 보지 않은 당신에게 물었어요. 

"미래를 알 수 있어 내 아이가 불치병에 걸린다는 사실을 알면 아이를 낳지 않으시겠어요?" 

당신은 말했죠. 

"어... 못 낳을 것 같은데요. 아플 걸 알면서 어떻게 그러겠어요."

나는 다시 물었어요. 

"만약 미래를 안다는 게 단지 결과만을 아는 게 아니라 모든 미래를 볼 수 있는 거라면 요? 태어난 아이를 바라보는 모습, 아이와 함께 뛰어노는 모습, 함께 그림을 그리는 모습, 물놀이하는 모습까지 다 기억처럼 선명하게 볼 수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당신은 망설이다 대답했죠. 

"그런 거라면 낳을 것 같아요." 

부연설명에도 변함없이 그럴 수는 없을 것 같다고 한 당신도 있었어요.

또 다른 당신에게 물었어요. 

"미래를 알 수 있어 내 자식이 불치병에...."

"낳아야죠! 당연히!" 

또 다른 당신은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 부연 설명을 듣기도 전에 말했어요. 나는 놀랐어요.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를 포함해서) 아마도 그런 선택을 하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우리는 먼 미래는 볼 수 없지만 가까운 미래에 아이가 유전병이 있는지 없는지는 판별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요. 나는 모두의 생각이 다 다른 것 같아서 만나는 당신마다 인사말처럼 묻고 다녔지요. 


arrival 삽입곡 on the nature of daylight

https://youtu.be/jBMP7HdEl0A


영화를 같이 본 당신은 어떨지 궁금했어요. 주인공이 기억처럼 선명하게 보는 미래의 모습을 화면으로 보는 거니까 좀 더 긍정의 선택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니더군요. 부연설명이 필요 없는 상황이라 두 번 물을 필요가 없었어요. 이유를 더 묻기는 힘들었습니다. 당신의 어머니는 오랫동안 아팠고 얼마 전 세상을 떠났으니까 충분히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똑같은 대답과 이유를 말한 당신은 아무도 없었어요. 다 각자의 상황과 최선을 반영해서 말했으니까요. 의아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가도 당신의 이유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지요. 실제로 일어나기 힘든 가상의 상황에도 모두 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른 선택을 한다는 사실이 어쩌면 당연하지만 또 놀랍기도 했어요. 


저는요? 글쎄. 너무 어려워서 설문 조사하는 사람 마냥 만나는 사람마다 묻고 다녔지만 잘 모르겠더군요. 이리 기울었다 저리 기울었다가. 태어나게 하는 것이 딸에게 너무 가혹한 운명을 겪게 하는 게 아닌가 싶다가도 딸의 예쁜 모습 찬란한 모습을 기억처럼 생생하게 가진 상태로 그 미래를 외면할 수 있을까. 그게 정말 딸이, 내가 원하는 일일까. 딸의 고통을 걱정해서라고 생각했는데 그 말속에는 내가 딸의 고통을 지켜봐야 하는 것이 두려워서 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정작 딸은 그 고통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데. 정말 미래를 보게 될 사람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상상했어요. 책을 읽을 때도 드라마를 볼 때도 영화를 볼 때도. 그러다 보니 조금씩 한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어요.


드라마 도깨비에서 은탁은 태어날 운명이 아니었는데 도깨비가 은탁의 엄마를 구해주면서 태어나게 되죠. 그 덕분에 은탁의 엄마는 9년의 생을 원래 운명보다 더 살게 됩니다. 그렇지만 은탁은 엄마가 죽고 나서 힘든 삶을 살게 되죠. 그래도 은탁이는 엄마를 원망하지 않아요. 엄마와 함께한 그 9년 덕분에 힘내서 살아갈 수 있는 추억을 얻었다고 말하죠. 상황은 다르지만 비슷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장면이었어요. 

그리고 이동진 씨의 영화평을 읽으면서 조금 더 긍정적인 선택으로 기울었어요.


[이동진의 어바웃 시네마] '컨택트'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 중에서

"모든 한정은 부정이다"라는 스피노자의 말이다. 루이스에게 삶이란, 미래를 안다고 해서, 즐거운 추억과 따뜻했던 일들만을 따로 골라서 살아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에게 삶은 아무리 괴로워도 그 모든 게 함께 가야 하는 것이다. 슬프고 아픈 기억 하나하나까지 제외하고나 남기지 않고 전부.


이터널 선샤인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이야기한 것이 조금 더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게 해 주었어요. 미래가 과거의 기억처럼 선명하게 회상처럼 다가온다면 좋았을(던) 기억을 없애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미래를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와 같은 것이라고 본다면. 이터널 선샤인에서도 헤어진 연인이 서로를 사랑한 기억을 지우지만 다시 사랑에 빠지잖아요. 언젠가 2년 전쯤에 쓴 일기를 어느 날 읽어보았는데 루시드드림을 꿨다고 쓰여 있었어요. 그런데 꿈 내용을 쓰지 않았더군요. 짐작은 가는데 기억이 나지 않았어요. 어쩌면 미래를 알지 못하는 건 이런 느낌이 아닐까. 미래를 추측할 수 있지만 기억처럼 와 닿지가 않아서 볼 수 없는 것 아닐까 생각했어요. 영화의 모티브가 된 원작 소설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 엄마와 딸은 이런 대화를 나눠요.


너는 나와 함께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고, 우리 무릎 위에는 두께는 얇으면서 가격만 비싼 하드커버 그림책이 놓여 있지. ~ 그러면 너는 책장을 손으로 누르고 나를 제지하지.
"원래대로 읽어줘. 엄마!"
"난 여기 나와 있는 대로 읽고 있는데?"
나는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지.
"아냐! 엄마가 한 얘기는 진짜 이야기하고 달라."
"벌써 무슨 얘긴지 알고 있는데 왜 나더러 읽어달라는 거야?"
"얘기를 듣고 싶으니까!"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너무 많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 같네요. 어느 선택이라도 정답이 없어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듣고 말한 저는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전히 마음이 쓰이고 궁금해요.


 

"미래를 알 수 있어 당신의 아이가 불치병에 걸린다는 사실을 알면 아이를 낳지 않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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