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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이 Jul 11. 2018

나는 왼손잡이였을까?

2017년 12월 10일의 일기




 왼손을 본다. 오른손보다 멀쩡하다. 오른손은 많이 써서 셋째 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이 휘었고 마디가 왼손보다 훨씬 굵다. 대부분의 오른손잡이가 그렇겠지. 언제였더라. 엄마가 내가 왼손잡이여서 고치게 했었다는 사실을 말해 줬던 때가- 아마 엄마가 왼손을 쓰는 걸 보고 내가 물었던 것 같다. "엄마 왼손 쓸 줄 아네?" 엄마는 나에게 되물었다. "너 기억 안 나? 너 왼손 쓰려고 해서 고치려고 했던 거. 할머니한테도 엄청 혼났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 났다.      


엄마는 왼손잡이였다. 엄마는 꽤 늦게까지 왼손을 쓰다가 오른손을 쓰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오른손이 불편하면 왼손을 잘 쓰는 편이다. 아마 엄마는 왼손을 쓰면서 혼나고 불편했던 상황들을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에 애초부터 내게 겪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는 글씨를 배울 때 젓가락질을 배울 때 왼손을 먼저 가져가는 나를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엄마는 본인을 닮은 내가 사랑스럽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을 것 같다. 엄마의 과거에 비춰 아직 오지도 않은 왼손잡이가 된 내 미래를 상상하면서 걱정을 했겠지. 그 걱정이 현재의 나를 오른손잡이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러면 나는 왼손잡이였을까 생각해본다. 이제 왼손을 잘 쓸 줄도 모를 뿐만 아니라 왼손을 썼던 기억조차도 다 잊었는데- 내 기억 속을 굳이 찾아서 언어로 표현해본다면 나는 왼손잡이가 될 수 있는 기회도 얻지 못했다. 나는 왼손잡이일 수도 있었다. 이 정도 느낌뿐이다. 엄마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왼손을 쓰려했다는 것조차 몰랐을 것이다. 엄마에게 내가 왼손잡이였다는 말을 들으면 황룡사지 절터를 봤을 때의 느낌이 든다. 돌 밖에 없는 벌판에 서서 상상을 해야만 하는 것. 약간 황당할 정도로 믿기도 힘든 것. 그런데 증거가 있다고 하니까 믿을 수밖에 없는 것. 절터의 주춧돌처럼 과거의 내가 내 안의 어딘가에 남아있을까?    

  


궁금해서 요새는 왼손을 의식적으로 많이 써보려고 한다. 글씨도 써보고 그림도 그려볼 때도 있고 밥도 왼손으로 먹는다. 얼마 전에 할머니 앞에서 왼손으로 밥을 먹었더니 할머니는 아직도 못 고쳤냐고 버럭 화를 내고 나는 기억도 없는 일에 대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데 엄마가 얼른 대신 해명을 해 준다. 요새는 안 쓴다고 그냥 한 번씩 쓰는 거라고. 나는 그 해명조차도 어색하고 ‘아직도 라고? 내가 진짜 왼손을 쓰긴 썼나 보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그런데 아무리 왼손을 써 봐도, 그런 소리를 들어도 내가 왼손을 썼던 기억, 느낌은 찾을 수도 느낄 수도 없다. 왼손을 썼던 그 애가 내가 맞긴 맞을까? 할머니가 착각하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엄마와 할머니 기억 속의 나는 왼손잡이였다. 그래서 나를 왼손잡이였던 사람으로 대한다. 그런데 내 기억 속에 나는 왼손잡이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갑자기 혼란스럽고 나를 낯선 사람으로 느낀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처럼- 할머니와 엄마가 거짓을 말하는 게 아니라면 당연히 내가 왼손잡이였다는 게 사실이고 진실이겠지.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나에게는 그 진실이 어떻게 생각해도 사실로 느껴지지 않는다. 상상 같고 허구 같고 전래동화 같다. 아무리 듣고 봐도 그 사실은 내 기억이 되지 않는다. 이 기억과 사실의 불일치에서 나는 나에 대해 갑자기 이물감을 느낀다. 퍼즐을 다 맞췄다고 생각했는데 남는 조각이 발견된 느낌.      


나는 과거의 나의 기억들을 모아서 나라는 존재를 머릿속에서 다듬고 생각해왔다. 그게 곧 나였다. 그런데 이런 기억의 총합에 존재하지 않지만 분명히 실재했던 나를 발견할 때 순간 압축되어 있던 기억들 속의 내가 길게 늘어나고 나라는 존재들이 조각조각나면서 갑자기 과거의 나를 타인처럼 느낀다. 그 왼손잡이 애가 정말 나일까?  그 애는 어디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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