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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이 Jun 03. 2018

 소설 속 인물과 나눈 이야기

생각을 나누다





소설에서 인물이 하는 말이 실존하는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혹은 더 큰 울림으로 와 닿은 적 있나요? 소설 속의 사람은 실존하지도 않는데 살아있는 사람의 이야기보다 호소력 있고 마음에 와 닿을 때가 있더라구요. 그의 말들은 다니 소설 속의 대사지만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작가가 직접 말하는 것보다 더 크게 다가왔어요. 아마도 작가가 생각하고 생각해서 다시 또 고르고 고른 말들을 글로 옮겼기 때문이겠죠. 



언제나 궁금했어요. 어쩌다 무슨 마음으로 글을 쓰게 되는지, 어떤 내용이 머릿속에서 떠오르고 흘러나와 글을 쓰게 되는지. 글을 쓰면서도 궁금했죠. 그냥 쓰면 된다는 선생님의 말도, 흔히들 보는 글쓰기 책들의 내용들도 와 닿지 않았어요. 나는 계속 궁금했어요. 그냥 쓴다는 게 뭐지 그냥 쓴다고 이 넓고 넓은 종이가 가득 채워지나.      

어느 날 김연수 님의 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읽는데 주인공의 남자친구 유이치가 말했어요.




"글을 쓰기 시작하면 작가야. 아침에 일어나면 글을 써 3페이지씩 매일매일 떠오르는 모든 생각들을 다 써. 막막하면 막막하다고 써. 지금 막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글을 써보면 어떨까? 그 상자를 이용해서 유년에 대해서 쓰는 거지. 작가처럼"

"작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나 역시 시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어느 날, 자다가 깨어서 뭔가를 쓰기 전까지는 말이야. 시인이든 작가든 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될 수 있는 게 아니야. 뭔가 쓰는 순간 되는 거지. 처음 본 순간부터 넌 작가라고 생각했어. 첫 번째,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해. 고독을 즐기지. 그러니까 레드우드의 에너지에 끌려서 거기까지 걸어온 거야. 내면적이고 달의 영향권 안에 있어. 두 번째, 그래서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가장 강한 사람들과도 투쟁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아. 세 번째, 무엇보다도 네게는 쓸 이야기가 너무나 많아. "    




사실 내용은 그냥 쓰면 된다는 글쓰기 책에 계속 나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죠. 그런데 처음 들은 것 같았어요. 프루스트가 “지은 책보다 뛰어난 작가는 없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책이 형편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던 게 생각나요. 


갑자기 이 얘기를 왜 하냐구요? 그냥요. 당신에게 하고 싶었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아무한테나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아니 아무한테도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지금 당신에게 말하고 싶어요. 


늘 대화의 흐름과 맥락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굳이 끊고 싶지 않았어요. 언젠가 이런 주제가 나오면 이야기해야지 하면서 말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런 순간이 오지 않을 수도 있더군요. 흐름이 오지 않을 수도, 내 생각들이 사라져 버릴 수도, 얘기하고 싶었던 사람과 인연이 없어질 수도 있었지요. 아까웠어요. 흩어지는 게 내 생각도 인연도 만약-정말 의미 없는 단어지만- 내가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해서 그 인연이 흩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


 그래서 내 생각이 흩어지는 게 아까워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뇌에 관한 과학책을 찾아 읽었어요. 내 생각들이 뇌 어디에 붙어 있는지 흩어지면 어디서 찾을지 알아보려고. 그래도 말은 하지 않았어요. 여전히. 


그러다 누가 그러더군요. 그냥 떠오르면 이야기한다고 그런다고 상대가 이상하게 보거나 싫어하지 않는다고. 머리로는 알고 있었어요. 다른 이에게 직접 들으니 느낌이 달랐어요. 상상해보면 당신이 갑자기 별들에 대한 이야기, 페루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당신을 이상하게 보지 않을 건 너무도 분명한데 나는 왜 멈칫하고 다음으로 미룬 걸까요? 언제 올지 모를 아니 올지 안 올지 모를 다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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