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떠나는 우리의 여름휴가

내리내리 아래로만 흐르는 물인가 사랑은

by 알이






김연수 님의 청춘의 문장 중 좋은 문장을 옮기고, 읽고 떠오른 생각들을 기록합니다.




'열무와 나의 두 번째 여름이다. '

'소중한 것들은 스쳐가는 것들이 아니다 당장 보이지 않아도 오랫동안 남아 있는 것들이다. 언젠가는 그것들과 다시 만날 수밖에 없다.'

'사랑은 물과 같은 것인가 그 큰 사랑이 내리내리 아래로만 흘러간다.'




소중한 것들은 왜 당장 보이지 않을까.


김연수 작가처럼 나도 고등학생 시절 어서어서 이 시간들이 지나서 빨리 집을 떠나고 싶었다. 그때는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나가서 누릴 자유만 보였을 뿐. 실제로 혼자 살기 시작해서도 늦잠자도 되는 것, 아침을 안 먹어도 되는 것, 늦게까지 놀아도 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들이 너무 좋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게 좋고 다시 집에 돌아가서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만 그때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인생에서 다시없을 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좀 더 소중하게 생각했으리라. 어서어서 지나가라 기도하지 않고.


아직 나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지만 엄마가 나를 낳았을 나이를 지나고 친구들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들으면서 사랑은 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어렴풋이 생각한다. 나도 엄마를 사랑하지만 내가 어릴 적 말썽 부린 일들을 떠올리면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건 정말 놀랍고도 대단한 일이다. 그러니까 내가 엄마를 사랑하는 건 당연한 일에 가깝지만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건 기적 같은 일만 같다. 엄마라서 당연한 게 아닌 것 같다. 나는 나 같은 애를 엄마처럼 사랑으로 키워 내지 못 할 것이다.


김연수 작가가 푸른 여름 아래를 열무와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두 번째 여름이라고 중얼거린 부분을 읽을 때 엄마 아빠와 늘 함께 한 스무 번쯤의 여름들이 머릿속에 그려지며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우리가 많은 여름들을 함께 보냈구나. 사실 아빠는 그 나이 때의 남자들과 마찬가지(훨씬 심하게)로 가족과 같이 보내는 시간이 아주 적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빠를 무지 좋아했다. 지금도 가끔 말 배울 때 엄마보다 아빠를 먼저 말했다고 엄마가 서운했다며 웃으며 말한다. 초등학생 시절 일기를 읽어보면 아빠에 대한 내용이 아주 많다. 아빠가 늦게 와서 아빠가 출장 가서 슬프고 보고 싶고 어쩌다 일찍 들어오면 기쁘고. 그리고 앨범들을 보면 여름마다 놀러 간 사진이 같이 보냈던 시간에 비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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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큰 텐트를 가지고 계곡에 놀러 갔는데 아빠는 공고를 나왔지만 선입견에 맞서 싸우기라도 하듯 공고를 나왔다고 하면 잘 할 것 같다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서툴러서 텐트 치는 데에도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날 밤 비가 왔다. 엄마는 아빠 이름에 물이 들어가서 우리가 날씨 운이 없는 거라고 말했고 우리는 텐트를 두드리는 빗소리가 재미있었다. 텐트에 매달아 놓은 조그마한 전등이 그 두드림에 떨려서 텐트 속 전체가 어질어질했다. 아침에는 비는 그쳤지만 물이 불어나 계곡 가까이 세워 두었던 차를 빼는데 애를 먹었다. 차는 물과 자갈이 섞인 땅을 빠져나가려다 자꾸 헛돌았다. 아빠는 또 땀을 뻘뻘 흘렸지만 나는 모험을 떠난 사람 마냥 신났다. 그 해는 아마 우리가 같이 보낸 열 한 두 번째쯤 여름이었을 것이다. 지금 떠올리면 아빠가 정말 고생이 많았겠다 싶다. 그때는 여름에 더 자주 놀러 가지 못 하는 게 불만이었고 우리 가족끼리 가지 않고 여러 가족이 모여 가는 게 싫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까지도 나는 그 고생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 같다. 취직을 하고 얼마 후 내가 숙소를 예약하고 여행 코스를 짜서 넷이서만 여름휴가를 떠났다. 이제 우리는 같이 살지 않아서 시간 조정하는 것도 꽤 여러 번의 통화가 필요했다. 그렇지만 나는 꼼꼼하지 못해서 식당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고 동선은 엉망이라 녹차밭 구경을 하러 가면서 스릴러 주인공 마냥 입장이 가능할까 마음을 졸였다. 그 순간들 마다 우리는 그것 또한 재밌었지만 나는 마음 한편이 조금 불편했다. 그날 밤 우리는 펜션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술도 마시고 고스톱도 쳤다. 그 해 여름도 즐거웠지만 돌아오는 길 여행 준비를 좀 더 열심히 할걸 생각했다. 그제야 아빠의 부담을 조금 짐작할 수 있었다. 그 해 우리 가족의 여행은 아빠의 부담을 조금 분담하고 재미는 좀 더 늘었을까.


아빠는 우리가 함께 보내기 시작한 해부터 바다를 건넜을 것이다. 물처럼 흐르는 사랑을 내가 미처 알지 못했을 뿐. 이제야 조금 헤아려본다. 아빠도 아빠가 익숙하지 못했음을. 그럼에도 나에게 오랜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오랫동안 남아 있는 것들을 주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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