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늦게 다가오는 말들

지금도 슬픈 생각에 귀를 기울이면

by 알이






김연수 님의 청춘의 문장 중 좋은 문장을 옮기고, 읽고 떠오른 생각들을 기록합니다.



'무릇 생선이나 고기를 구울 때는 젓가락으로 뒤집고 맨손으로 뒤집지 말라. 그리고 손에 묻어도 빨아먹어서는 안 된다. ' '무나 참외를 먹다가 남에게 줄 때에는 반드시 칼로 이빨 자국을 깎아버리고 주어야 한다.'

-이덕무 사람답게 사는 즐거움.


'그런데 따분하게 이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왜 그랬을까? 순전히 밟으면 삐걱대는 오래된 마루 널처럼 몸이 아픈 어머니를 떠나보낸 내 감정이입일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세 남매는 울기만 했다. 어머니 몸에 그 정도 바늘이 꽂히는 것도 두 눈 뜨고 못 보는 우리 남매가 어머니 없이 어떻게 지낸단 말인가. ~ 어머니는 그렇게 우리를 세상으로 불러준 당신의 아기집과 영영 헤어지는 일을 모두 끝마쳤다.'

'슬픔을 말하지 않고 공자가 아니었더라면 이라고 말하는 사람. 스스로 견디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하지 않고 생선을 맨 손으로 뒤집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 그런 사람의 눈에 맺힌 눈물 자국이 아직도 눈에 보이는 듯하다.'


김연수 청춘의 문장 -지금도 슬픈 생각에 귀를 기울이면- 중에서



대학을 가고 집에서 나와 살게 되면서 가족과 꽤 먼 거리를 떨어지게 되었다.


엄마도 나도 감정표현에 넉넉한 사람들은 아니어서 오기 직전까지도 잔소리에 가까운 걱정을 했을 뿐 각자의 감정 자체에 대한 대화를 나눈 적은 거의 없었다. 서울로 같이 올라와 짐 정리를 하고 헤어지기 전날 학교 근처에 사는 외삼촌네 집에서 식사를 하면서 혼자 괜찮겠냐는 삼촌의 물음에 "뭐 얼마나 멀다고- 집에서 나와 살고 싶었어."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지만 구워 놓은 고기는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실 그럼에도 도통 실감이 나지 않아 아무렇지 않은 척이라도 가능했을지 모르겠다.


막상 집으로 출발하는 버스에 혼자 오르려는 엄마를 보니 속이 울렁거리고 시렸다. 엄마는 잘 지내라며 나를 꼬옥 안아 주었다. 그제야 눈물이 흘러나왔다.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엄마의 우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손에 꼽을 만큼 힘든 일이었다. 엄마는 내가 우는 것을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셀 수도 없이 보았겠지만-

울면서 또 웃으면서 금방 볼 수 있는데 왜 우냐고 서로를 향해 말했지만 둘 다 왜 눈물이 나는지 잘 알면서도 또 알 수 없었다. 엄마의 눈 속에 내가 7살짜리 어린 애로 보인다는 것을 알아서 나는 7살짜리 아이가 혼자 남는 것처럼 울었다. 엄마도 7살짜리 아이를 혼자 두고 가는 엄마처럼 울었다.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나. 엄마에게 평소에 조금 더 따뜻하지 못했음을 후회했었나. 혼자 남겨지는 것 같아 무섭고 서러웠었나. 내가 왜 서울로 학교를 가겠다고 해서 엄마를 울게 할까 생각했나. 이제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다 잊히고 버스 문 앞에서 포옹을 하고 서로 눈물을 닦아 줄 때 엄마의 눈물 가득 고여 웃던 얼굴과 내 눈물을 닦아 주던 손길과 버스에 타서 웃으며 손을 흔들던 그 얼굴만 남았다. 그것 만으로도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언제든 나를 그 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도 애틋했던 것이 무색하게 대학 생활 3년이 다되어 가던 해 방학 나는 집에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있던 방을 정리하고 짐 싸는 것도 귀찮고 집에 가서 잔소리들을 일도 귀찮아 어찌하면 안 갈까 알바를 몇 개 할까 그 궁리 중이었다.


방학이 얼마 남지 않은 주말에 별 일 없으면 내려오라고 엄마와 통화를 했는데 주말 알바 때문에 못 갈 것 같다고 했고 엄마는 그러면 어쩔 수 없겠다고만 했다. 그날 밤 엄마가 누군가에게 몽둥이로 맞는 것을 보고 놀라는 악몽을 꿨다. 아침에는 고모에게 전화가 와서 꼭 내려오라고 오지 않으면 두고 후회할 거라고 했다.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집에 내려갔다.



모든 것을 다 알고 내 힘으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스무 살 이제 좀 넘긴 애가 생각할 수 있는 안 좋은 일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엄마가 차린 저녁을 먹고 엄마는 설거지를 하고 거실에서 아빠와 티비를 보는데 아빠가 돌아오는 월요일에 엄마가 수술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러한 결과가 나와서 수술 날짜를 잡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이미 그 과정은 훌쩍 지나 수술 날까지 받아 놓은 상태였다. 그 얘기를 듣고 있는데 그 같은 공간 안에서 엄마가 설거지를 하고 있는 게 정말 티비를 보는 것처럼 다른 세상 얘기 같았다. 비현실적이었다. 수술하기 이틀 전 저녁에도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 사람을 보는 것.


모든 것을 다 알고 내 힘으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나는 갑자기 아찔해지고 세상이 너무 무서워졌다. 아무것도 몰랐고 모를 뻔했다는 생각에 억울해서 가슴을 쳤다. 아무리 진정하려 해도 눈물이 그치지 않아서 방에 들어가서 한참을 더 울다 나왔다. 엄마는 이제 과일을 깎고 있었다. 그만큼 울어야 그제야 엄마가 보이는 나이였다. 나는 뒤에서 엄마를 안고 치댔다. 그때 또 무슨 생각을 했나 역시 떠오르지 않는다.


엄마가 입원을 하고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게 된 나는 어떤 일을 하든 간에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설거지를 하고 나면 주변 물기를 훔쳐내라.' '요리하고 나면 바로 가스렌지 주변을 닦아라.' '반찬은 꼭 먹을 만큼 덜어먹어라.' '방청소할 때 꼭 창문을 열어라.' '세탁기 문은 항상 열어 둬라.' '빨래를 널 때는 털어서 널어라.' 그런 마음으로 이덕무도 그 책을 썼으리라. 아무리 그 목소리를 따라 집안일을 하고 그 목소리를 글로 옮겨 내도 집안의 허전함이 채워지지 않음을 느꼈으리라. 엄마는 이제 시간이 꽤 지나 완치 판정을 받았고 나보다 더 건강하다고 농담할 정도가 되었지만 그 후로 엄마가 갑자기 사라질까 두려워하게 되었다. 이덕무의 글 언저리에 묻은 눈물을 헤아리는 김연수처럼 나도 그 아픔을 두려워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