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앞에 나는 없었다.
권태로 가득 찬 얼굴
그만 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는 입
붙잡는 내 손을 뜯어 내리는 손
어떤 애고도 듣지 않는 귀
떠날 곳으로 돌아가고 있는 등
걸어가는 다리와 발
꿇은 무릎이 바닥에 갈려 피가 맺혀도 일어날 수 없던
품에 있던 바지 자락이 숨의 전부인양 손 등을 긁으며 부여잡던
냉기 가득한 얼굴을 바라 볼 눈이 없는
함께한 계절을 말할 입이 없는
얼굴 가득 묻은 눈물들을 훔쳐낼 손이 없는
산탄총처럼 꽂히는 목소리를 들을 귀가 없는
두려움 앞에 떨려할 등이 없는
엎드려 매달릴 무릎이 없는
떠나는 다리를 붙잡을 팔이 없는
기어코 떠나는 당신을 따라나설 발이 없는
당신이 없는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