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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이 May 15. 2019

비자열매의 의외성

아무 거나 주워 먹지 마세요!



시인은 친구들과 제주에 놀러 갔다가 천남성을 먹었다고 했다. 천남성은 사약 재료로 알려져 있는 맹독성 식물이다. 친구들이 말리고 할 틈도 없이 입에 넣고 씹었다가 입 안이 타는 듯 너무 뜨거워 뱉었지만 혹시 몰라 병원으로 향했다고 했다.          



작년에 비자림에서 천남성 열매를 먹지 말라는 표지판을 본 것이 떠올랐다. 그때 저걸 대체 누가 주워 먹어 생각했는데 이렇게 먹는 사람이 있었군. 순간 그렇게 연약해 보이고 낯가리는 시인의 전형 같은 사람이 그런 걸 주워 먹다니 의외라고 생각했다. 사람을 그의 겉모습을 표현하는 몇 개의 단어 또는 내 머릿속 이미지로 판단해서 안 된다는 생각은 조금 뒤에 따라왔다. 늘 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잘 안 되는 것. ‘의외다.’ 이 말은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좋은 의도 거나 또는 별 뜻 없었더라도 듣는 입장에서는 기분이 좀 묘해질 수 있다.



 그 전에도 꽤 여러 번 들었고 나도 자주 사용했지만 회사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 단어의 묘한 느낌에 대해 인지했던 것 같다. 건축과를 나왔다고 했을 때, 노래방 가는 걸 좋아한다고 했을 때 그 말을 들었다. 그저 점심시간에 어색한 신입에게 호구조사 조금 한 것뿐이었지만 그 신입은 퇴근하는 길 그 말을 계속 의식하며 뭐가 의외라는 거지 곱씹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회사 사람들은 내 진짜 모습은 모른다고 생각했다. 얼마 후에 대학 동기들과 만나 신입의 서러움을 떠들고 있었는데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의외다. 그 녀석은 내가 동기들을 대할 때처럼 회사에서도 미친놈(조금 순화한 표현으로)처럼 막말을 퍼부을 줄 알았다고 했다. 웃으며 떠들고 돌아오는 길에 이미 한 번 의식한 그 단어는 또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주 친한 사람에게만 공개되는 거친 언행을 온 곳에서 다 하고 다닐 거라고 생각했다니 그놈이 나를 잘 모르는 군 생각했다. 



집 현관문을 열면서 생각했다. 그럼 내 진짜 모습을 다 아는 사람은 누구지? 아는 사람 전부를 다 떠올려도 없었다. 오래 알고 지냈다고 다 아는 것도 아니었다. 엄마도 내 모습을 다 아는 건 아니니까. 사춘기 소녀처럼 멍 때리다가 내가 누군가에게 의외라는 말을 했던 몇몇의 순간도 떠올렸다. 그 말을 할 때 나도 좋은 의미에 가까운 의도로 또는 별 뜻 없이 했지만 듣는 사람을 나처럼 혼란스럽게 만들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가끔 우리는 내가 보는 당신의 모습만 전부라고 생각해 서로를 혈액형 별로 사람을 나누듯 파악해버리고는 그 사람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회사 선배는 나라는 사람을 회사에서 한 달 동안 본 모습으로 어느 정도 파악했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친구는 편한 사람들과 본모습을 곧 나의 성격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테투리를 벗어나는 느낌을 받아서 그렇게 말했을 터. 그러니 그런 말을 듣는 순간 나를 다 모르면서 의외라니 발끈하게 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쉽게 그런 잣대가 뻗어 나온다. 조금 너그러우려면 주변을 빠르게 파악하려는 인간의 본능이라고 해줄까. 


뭐든 하루만큼 어제 보다 나은 사람이 되는 것도 꽤 어려운 일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어제보다 오늘 조금이라도 듣는 이에게도 하는 이에게도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뭉뚱그려 쉽게 뱉는 말들이 아닌 당신에게만 따뜻하게 닿는 말들. 그래서 좋은 생각을 연습하려 하지만 번개처럼 튀어나오는 생각을 다시 집어넣는 건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비자림을 돌아 나오는 길에 카페에 천남성 차가 있다고 해서 궁금해 들어 가봤다. 도대체 먹지 말라는 열매를 어떻게 가공해서 차로 만드는 걸까 궁금했다. 주인아주머니께 숲에는 천남성을 먹지 말라고 되어 있는데 어떻게 이걸로 차를 만드는 거냐고 물었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기서 파는 건 비자열매 차고 천남성은 먹으면 큰일 난다고 말했다. 다시 창밖의 메뉴판을 보니 비자열매 차라고 쓰여 있는 걸 내 눈은 천남성 열매라고 읽은 것이다. 단 한 글자도 비슷하지 않은 걸. 나중에 보니 비자나무와 천남성은 나무와 풀로 생김새가 아주 다르지만 열매가 둘 다 붉은 알맹이로 꽤 비슷하게 생겨서 사람들이 착각해서 먹는 일이 꽤 있었던 모양이었다. 열매를 착각하는 사람은 있어도 글씨를 멋대로 착각해서 보는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 같았다. 멍청한 질문을 하고는 카페에 앉아서 비자열매 차를 마셨다. 비자열매 차는 붉은 열매 색과 달리 의외로 맛있지 않았다. 나무뿌리 우린 것 같은 맛이었다.  당근케이크를 처음 먹을 때와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상상한 맛과 입 속의 맛이 완전히 부조화를 이룰 때의 느낌. 온 숲을 싱그러운 향으로 가득 채우는 비자나무도 차맛이 의외였다는 내 얘기를 듣는다면 조금 발끈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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