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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이 May 29. 2019

취직을 하는 이유

의기소침하게 묻는 




오랜만에 청첩장 같은 용건 없이 고3 같은 반 친구들과 만났다. 지방에서 올라오거나 서울이어도 사는 곳이 다 멀리 떨어져 있어 몇 번이나 만나는 장소를 바꾼 끝에 강남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모이는 인원이 6~7명 정도 되어 식당에서는 3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주말 저녁 어딜 가도 그럴 것 같아 먼저 온 사람들끼리 대기석에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 그중 A는 거의 1년 만에 만나는 것이었다.


 A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한동안 취업준비를 하지 않았고 본가로 돌아가지도 않았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를 벌었고 평일 심야 스키장에 혼자 보드를 타러 갔다. 늘 허허실실 웃으며 말하는 친구가 마냥 자유로워 보였다. A보다 한 해 늦게 졸업한 나는 그 당시 취직을 하지 못하면 본가로 당연히 돌아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에게는 인생의 실패 같았다. 지금은 당연히 그렇지 않고 어떤 일도 인생의 실패라고 정의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그게 당연했다. 그 생각이 안 그래도 스트레스가 많은 취업 준비 시절 내 상태를 더 벼랑 끝까지 몰아갔다. 그런 나에게 친구의 선택은 약간 숨통을 틔워주는 것 같았다. 다른 길도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는 사람이 가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었다. 



그로부터 5년쯤 지난 어느 날 동창의 결혼식이 끝나고 커피를 마시던 자리에서 A는 여전히 허허실실 하며 취업준비를 할까 한다고 말했다. 엄마 잔소리를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고 했다. 2년 정도 본가에 내려가 취업준비를 하고 작년에 공기업에 합격해서 지방에 있으니 이렇게 날을 잡아 모이지 않으면 만나기가 힘들어졌다. 맨날 늦더니 멀리 사니까 일찍 왔냐며 시답잖은 소리나 하고 있는데 다른 친구가 들어왔고 역시 오랜만에 보는 A에게 왜 이렇게 예뻐졌냐고 말을 건넸다. 친구는 자기 손으로 볼을 쓸어내리며 살이 빠져서 그런 것 같다며 멋쩍게 웃었다. 그리고 잠깐의 정적, A는 갑자기 눈물을 쏟았다. 너무 갑작스러워 보는 사람도 우는 사람도 모두 당황했다. 전날 회사 선배에게 이런 식으로 할 거면 그만두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그 사람을 욕했지만 식당 대기석에서 갑자기 터진 눈물의 이유는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얼마 전에는 팀에서 쓸 비품을 양손 무겁게 들고 와서 문을 열고 들어가다 비품이 쏟아졌는데 그 순간 다들 A를 한 번 쳐다보고는 그대로 각자 업무를 했다고 했다. 그 순간 스스로가 너무 초라해 그대로 사라지고 싶었다고 했다. 어쩌면 신입 시절 한 번쯤 느낄 수 있는 감정이지만 A가 다니고 있는 회사 위치는 완전한 타지였다. 본가에서도 서울에서도 차로 3시간 이상 걸리는 곳이었다. 그 지역에 대해 심리적인 맵핑을 제대로 하기도 전에 회사에 적응하느라 집과 회사만 오가고 있으니 가볍게 만나 그런 일을 얘기할 사람도 스트레스를 풀려고 산책을 할 곳도 없었다. 그런 서러운 날 퇴근하고 낯선 타지의 캄캄한 방으로 혼자 들어가는 A의 모습을 상상하니 속이 시렸다.


모두들 한 마디씩 했다. 이미 연고 없는 다른 타지에서 꽤 오래 일하고 있는 친구는 처음엔 다 그렇다고 조금 있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고 다른 친구는 발령 신청을 해보는 게 어떠냐고 했고 같은 계열에서 일하는 친구는 최소 3년은 있어야 될 거라고 본인도 그런 팀에서 일할 때 정말 그만두고 싶었다고 했다. 자영업을 하는 다른 친구는 너도 참지 말고 할 말을 다 하라고 했고 회사 다니는 친구들은 그건 솔직히 불가능하다고 했다. 매일 회사를 때려치우겠다는  나는 내가 먼저 그만두고 여행 가 있을 테니 따라오라고 했다. A는 그 말들에 웃었고 또 한숨도 쉬었다. 


A는 아르바이트만 해서 생활할 때 취미가 아주 많았다. 보드도 타고 아이돌 덕질도 하고. 그래서 취직하면 더 여유로운 자금으로 취미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모든 것에 다 의욕을 잃은 것 같다고 했다. 

대체 취직은 왜 하는 걸까?  내가 취준생일 때 열심히 고뇌했지만 한동안 잊었던 그 질문을 다시 떠올렸다. 자소서에도 늘 묻는 질문 아니던가 지원동기가 무엇입니까? ‘돈 때문에’를 길게 늘여 쓰는 것이 지원동기라고 하기도 하는데 정말 돈 때문인가. 단지 그것 하나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물론 더 많이 벌면 좋겠지만 A는 아르바이트만으로도 취미생활까지 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수 없어서? 나도 세 번째 휴학 때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고 A도 엄마에게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었다. ‘지금이야 좋지. 나이 들어 후회하면 돌이킬 수 없다.’ 그런 말들이 현실이 될까 봐 무서워서 열심히 취직하려고 노력한 걸까. 아니면 다들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모습이 좋아 보여서 하려 한 걸까. 아니면 이유가 어딨어. 다 하니까 하는 거라고 답을 내버리면 되는 걸까. 취직만 한다고 행복한 삶이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다만 조금의 불행으로 조금 더 많은 행복을 얻을 줄 알았는데 너무 많은 불행과 조금의 행복을 교환하고 있는 것 같았다. 


2차로 자리를 옮기자마자 A는 심야버스를 예약해 뒀다며 일어났다. 당연히 자고 갈 줄 알고 내 방에 이부자리도 다 깔아 두고 왔다고 떼를 쓰듯 버스 취소하고 가지 말라고 했다. A는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쉬어야 출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혹시 마음 바꿀까 큰 길가까지 같이 걸어가면서 혹시 차 놓치면 꼭 다시 오라고 말했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1년 후쯤 그런 때도 있었지 하고 웃으면서 이야기할 날이 오기를 바랐다. 답을 알 수 없는 많은 질문들이 떠올랐다 흩어져버리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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