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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이 Jun 13. 2019

대구탕을 끓이는 데 필요한 것

대구 마늘 고추 양파 그리고




대구로 맑은 국을 끓였다. 제법 생선이 커서 가지고 있는 냄비 중에 제일 큰 것을 꺼냈다. 손질이 잘 되어 있어서 양파, 마늘, 고추만 조금씩 넣고 끓였는데도 국물이 시원하고 은은한 감칠맛이 돌았다. 살이 두툼하게 제법 많아 하얗고 통통한 살에 밥을 얹어 먹으니 탄탄하고 고소한 씹는 맛이 입안에 가득했다. 양이 제법 많아 몇 끼를 다른 찬 없이 대구탕만 먹어도 충분했다. 늘 비슷비슷한 재료로 단출하던 내 밥상에 모처럼 맛있고 귀한 음식이었다. 


맛있고 귀한 그 대구는 외할머니께서 얼마 전 서울에 올라오시면서 가지고 오신 것이었다. 바닷 대구 3마리와 고등어 2마리 그리고 텃밭이라고 하기엔 조금 큰 밭에서 키운 홍고추 말린 것, 깨소금, 참기름, 파김치 등등 여러 먹거리들도 같이 주셨다. 엄마가 가져온 반찬까지 더해서 냉장고는 불빛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빈틈이 없었다. 


재작년 가을 엄마와 외할머니께서 올라오실 때는 터미널로 마중 나갔었다. 하차장에 서 있는 할머니와 엄마를 봤을 때 아예 이삿짐을 짊어지고 온 줄 알았다. 외할머니 몸만 한 아이스박스와 엄마 몸만 한 배낭 두 개를 바닥에 내려 두고 걸어오는 나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들고 온 건지 궁금해지는 양의 짐이었다. 집에 와서 짐을 풀고 냉장고에 넣으려 하니 다 들어가지도 않아서 보일러실 창문을 열어두고 간이냉장고로 썼다. 냉장고가 이렇게 작을 줄 몰랐다며 더 들고 왔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엄마와 외할머니는 말했다. 엄마가 꺼내 달라고 한 그릇을 찾고 있던 나는 그 말을 듣고 조금 과장해서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꼈다. 


그래서 이번에 오실 때는 조금만 가져오시라고 전화를 할 때마다 말했다. 외할머니도 엄마도 냉장고 크기를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많이 가져가지 않을 거라고 하셨다. 이번에는 일이 늦게 끝나 마중도 가지 못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숨이 닿도록 집으로 뛰어가니 집 앞에서 재작년과 같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웃고 있었다. 짐은 다행히 그때보다 적은 듯했다. 엄마는 냉장고 정리를 마치고 이번에는 딱 맞게 가져왔다고 뿌듯해했다. 



나는 음식을 찾아 먹진 않지만 내 앞에 가져다 놓은 건 절대 썩히거나 버리지 않고 다 먹어치운다. 그걸 잘 아는 엄마는 내가 본가에 오거나 엄마가 올 일이 있을 때마다 배낭이 터져라 먹을 것으로 짐을 싼다. 그 덕에 나는 가끔씩 한우 스테이크도 해 먹었고 봄나물 비빔밥도 해 먹었고 비싼 꿀로 해장했으며 밥 대신 멜론으로 배를 채운 적도 있었다. 


 이번에도 혼자서 몇 끼를 냉장고 속 반찬만으로도 풍족히 밥을 먹고 대구로는 맑은 국을 끓였고 고등어는 조림을 해 먹었다. 때때로 혼자 장을 봐서 음식을 해 먹을 때 생선은 먹는 것은 좋아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아 사서 조리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이 생선들을 어떻게 해 먹어야 하냐고 물었다. 엄마는 조리법을 물어보면 10살짜리가 부엌에 들어온 마냥 상세히 설명을 해준다. 언젠가 바지락 해감을 물었을 때도 전화기가 뜨거워질 때까지 통화했었다. 대구탕도 마찬가지로 긴 통화가 끝나고 조리를 시작할 수 있었다. 검색하면 사진까지 나와 있는 조리법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그래도 나는 엄마에게 묻는다. 그러면 외할머니께서 준비해 준 재료와 엄마의 조리법으로 음식을 만드는 내가 된다. 



먹는 것이 곧 그 사람이 된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지금은 1년에 4~5주 정도만 괜찮은 사람이겠지만 본가에서 살던 어린 시절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외할머니는 엄마가 어릴 때 횟집까지는 아니고 조그만 실비집을 하셨고 외가는 항구 바로 앞이다. 그럼에도 날 것은 입에도 대지 못하고 생선 손질도 할 줄 모르는 당신의 딸을 위해 늘 좋은 생선이나 먹을거리를 장만해 보내주셨다. 그 덕에 엄마는 어린 나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해 줄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먹기만 하던 내가 외할머니께서 장만해주신 생선으로 국을 끓일 수 있을 만큼 자란 이제야 깨닫는다. 한 끼를 만들어 먹는 것에 얼마나 많은 재료와 시간과 마음이 들어가는지. 그렇게 손질하고 장만하고 만들어 주는 음식이 값을 계산하기 힘들 만큼 귀한 것들이라는 것을. 내가 나 하나를 먹이는 데에도 이토록 번거롭고 많은 노력이 드는데 외할머니와 엄마는 자식을 먹이고 키워내는 것도 모자라 다 큰 자식의 끼니까지 챙기고 손녀의 먹을거리까지 챙겨 보내시다니 내가 먼 훗날 할머니가 되면 그럴 수 있을까 아득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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