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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이 Jun 21. 2019

물 떨어지는 어느 오후

사실과 감정




초와 우는 나란히 누워서 곧 물이 샐 것 같은 볼록 튀어나온 천장의 부분을 보고 있었다. 문득 초가 말했다. 

나 진짜 좋은 노래 찾았어. 요새 이것만 듣잖아. 

어두운 방 안에 노트북 불빛만 어슴푸레 빛났다. 우는 그 빛을 받고 있는 초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초가 음악을 틀고 고개를 홱 돌리며 말했다. 

어때? 이 노래 알아? 

우는 괜스레 잘 못하다 들킨 사람처럼 초가 고개를 돌리는 동시에 시선을 천장으로 향하며 말했다. 

어-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데

초는 다시 우의 옆으로 와서 누웠다. 그리고 손발을 까딱거렸다. 노래의 고조가 올라가면서 까딱이는 범위가 점점 넓어지더니 이제는 팔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아- 오늘에 딱 맞는 노래야. 시원하게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고 신나게 춤추고 싶잖아. 

초는 춤추는 거라고 말했지만 우의 눈에는 그냥 몸을 뒤집지 못하는 아기가 버둥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초가 너무 즐거워 보였기에 우도 즐거웠다. 여기 비가 새기 직전의 방 안에서는 초의 감정이 중요하니까. 언젠가는 우의 사실이 더 중요해질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 언젠가는 영영 오지 않을 공상과학만화의 미래 같았다. 초는 우에게 춤을 같이 추자고 하지는 않았다. 우는 그게 다행이기도 했지만 못 내 섭섭하기도 했다. 초의 동작은 점점 커져서 이제는 방안을 누워서 이리저리 돌아다닐 정도가 되어 버렸다. 우는 그 모습이 우스워서 큰 소리로 웃었다. 초는 그 웃음소리에 더 신난 듯 더 격렬하게 버둥거렸다. 

어때? 재밌지? 엇-! 차거- 물 떨어졌다! 에라이 더 떨어져라 막 떨어져- 

이미 방 밖에는 앞에 안 보일 정도로 하얗게 비가 내리고 있는데도 초는 기우제라도 지내는 무당처럼 말하며 더 열심히 버둥거렸다. 우의 웃음소리도 점점 더 커졌다. 어느덧 노래는 끝나고 초는 완전히 지친 듯 거친 숨을 쉬며 버둥거림 또는 춤을 멈췄다. 

너무 힘들어. 아까 먹은 거 소화 다 됐네. 아깝게. 

우의 웃음소리도 조금씩 잦아들었다. 우도 춤춘 사람 못지않게 거친 숨을 내쉬었다. 

아아 너무 웃겨. 배에 근육 생길 거 같아. 한두 번 해 본 움직임이 아닌데? 

누워서 춰 본 건 처음인데- 이것도 무지 힘든데? 너도 다음에 해 봐. 



초와 우는 처음 누웠던 물새는 자리가 잘 보이는 곳에 다시 나란히 누웠다. 아직까지도 둘의 숨소리는 고르지 못했다. 초가 천장을 보며 말했다. 

저기서 저렇게 물이 떨어져. 벽지가 아까처럼 살짝 볼록해지고 좀 더 있으면 물이 똑똑 떨어져. 처음 발견했을 때는 바닥에 떨어진 물만 봐서 내가 물을 쏟고 안 닦고 나갔다 들어온 줄 알았다니까. 기억 상실증이라도 걸린 줄 알고 오싹했어 좀. 

닦아야 하지 않아? 

어차피 계속 떨어질 텐데 뭐. 다 그치고 나서 닦지 뭐. 

똑- 똑- 방 안에 물 떨어지는 소리가 조용조용 퍼졌다. 

어릴 때 살던 우리 집도 물이 샜어. 거기는 물이 떨어지는 것도 모자라 곰팡이까지 피고 누전 때문에 차단기가 내려가기도 하고 그랬지. 거실에 빨간 바구니를 두고 저 소리를 똑같이 들었단 말이야. 그때 엄마가 그랬어. 아빠 이름에 물이 들어가서 우리가 이런 물 새는 집에 사는 거래. 그래서 나랑 동생이랑 뒷담화 하는 사람처럼 낄낄 웃으면서 그런 것 같다고 다 아빠 때문이라고 그랬지. 원래 자리에 없는 사람이 독박 쓰는 거지 뭐. 아빠 이름의 영향이 여기까지 미친 걸까? 

우는 초의 어릴 때 이야기를 들을 때 참 좋았다. 가끔 이야기에 집중할 때 옛날을 바라보는 듯한 먼 곳을 보는 시선도 좋았고 어릴 때 말투나 억양이 슬쩍 묻어나는 것도 좋았다. 함께 할 수 없었던 시간을 같이 보고 오는 것 같아 그것도 좋았다. 가 본 적 없는 초의 어릴 적 집을 마음대로 만들어 거기에 동생과 빨간 바구니 앞에 앉아 있는 어린 초를 상상하고 있는데 초가 갑자기 물었다. 

아니면 네 이름에 물이 들어가니? 

아니이- 내 이름에는 불 들어가. 내가 저 천장을 다 말려 줄게. 

뭐? 내 집을 홀랑 태울 셈이야? 당장 그만둬. 

우의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을 끄려는 듯 초는 우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둘은 마주 보고 웃었다. 또옥- 또옥- 물 떨어지는 소리가 둘의 등 뒤로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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