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이 Jun 25. 2019

쓴 편지들과 쓸 편지

뒤늦게 깨닫는 편지의 의미




일기를 꾸준히 쓰는 게 소원이던 날들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매일 의무적으로 써야 했지만 나는 꽤 부담 없이 쓴 편이었고 일기로 상을 받은 적도 있었다. 어이없게도 그 일기들을 전시하는 바람에 내가 좋아하던 남자애가 동네방네 공개되는 아픈 일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꾸준하던 일기를 중학생이 되고 의무가 없어지자 나는 곧바로 쓰지 않았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실망했던 것 같다. 일기라는 게 혼자 쓰기만 하면 되는데도 습관을 들이는 게 참 힘든 일인 듯하다. 공책을 사고 다이어리를 사고 몇 번 끼적이고 그대로 두는 일을 매년 하다 그런대로 꾸준히 쓴 지는 2~3년 정도 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실망을 조금만 해도 괜찮았을 거라는 걸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학창 시절에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나 확인해야 할 일이 생겨 그 당시의 사진과 편지들을 읽어봤는데 내가 편지를 일기처럼 쓰고 있었다.

 

6학년 때 옆 반 친구와 과학탐구대회에 나가게 됐다. 대회 준비를 할 때는 연습하고 공부하느라 이야기할 시간이 많았다. 그랬기 때문에 대회 성적은 형편없었지만 우리는 아주 친해졌다. 대회가 끝나니 다른 반이라 이야기할 시간이 부족했고 자연스럽게 편지를 쓰게 됐다. 공부시간에 편지를 써서 쉬는 시간에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오면 다음 쉬는 시간에 답장이 내 서랍에 들어 있었다. 한 장씩 뜯어 쓰는 편지지 묶음을 사면 채 1달을 못 갔다. 우리는 같은 아파트에 살았는데도 만나서 이야기할 시간이 부족했다. 지금 읽어보면 너무도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이 그때는 꼭 적어서 전달해야 할 중요한 이야기였다. 중학교는 다른 학교로 가게 되면서 편지 전달 장소는 각자의 책상 서랍에서 집 우편함으로 바뀌었다. 



그 당시 편지를 열심히 쓸 때는 몰랐지만 중학교 때는 거의 편지 공장이나 다름없었는데 다른 중학교에 다니는 친구와 주고받는 편지 외에 친구 5명과 돌아가면서 교환일기를 쓰고 있었고 1학년 때 어떤 캠프에 참가해서 알게 된 선생님과도 편지를 주고받았다. 교환일기는 졸업할 무렵에는 각자 2권씩 나눠가질 정도로 분량이 꽤 되었다. 만나서도 계속 이야기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편지를 쓰고 있으니 잘 때를 제외하고는 계속 대화 중이나 다름없었다. 순서대로 쓰니 나머지 4명이 어서 넘기라고 독촉을 했고 너무 양이 적으면 성의 없다는 일종의 댓글도 달리니까 머리를 쥐어 짜내서라도 일정한 양 이상을 써야 했다. 그래서 정 쓸 게 없으면 신문에 나온 오늘의 운세를 베껴 적기도 하고 종이 접기나 그림을 붙인 애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러면서 일기도 쓰려했다니 쓸 말도 없었겠다 싶다. 


고등학교 때는 중학교 때처럼 많이 쓰진 못했지만 학교가 달라진 친구와 간간히 편지를 주고받았고 대학교 때는 남자 친구가 군대를 가니 또 편지를 쓰게 됐다. 그렇게 쓰다가 이제 더 이상 편지를 쓸 일이 없으니 그제야 일기를 쓰게 됐나 보다. 근래에는 편지를 쓴 일이 손에 꼽을 정도다. 사실은 보낼 수 없는 편지만 자주 썼던 것 같다. 그래서 편지를 써서 상대에게 준 일은 다 기억이 난다. 유학 가 있는 친구에게 쓴 편지를 사진 찍어서 메일로 보낸 것, 청첩장 받을 약속 장소에 조금 일찍 도착해 기다리면서 써서 줬던 편지, 신혼 집들이하는 친구에게 줄 선물 사이에 끼워 준 편지까지. 


손으로 쓴 편지에는 꼭 답장이 하고 싶어 지는지 답장을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다 답장을 받아 지금도 가끔 읽어보곤 한다. 집들이 때 편지를 줬던 친구는 그다음 해 생일 선물에도 편지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지 이리저리 선물을 살펴보다 편지는 없냐고 물었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웃음이 터졌다. 편지는 결혼할 때만 써 준다고 또 결혼하면 쓰겠다고 눙쳤지만 조그만 카드라도 쓸 걸 생각했다. 



어느 날 읽은 책을 읽고 또 읽었는데 편지를 받는 일은 사랑받는 일이고 편지를 쓰는 일은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렇게 편지를 쓰면서도 몰랐던 편지의 의미를 이제야 깨닫는다. 


그때는 편지를 주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많이 써서 주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답장이 늦으면 또 쓰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답장을 달라고 말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또 많이 받아도 부담 없이 읽었고 그저 당연했다. 편지를 쓰고 싶은 사람도 많았다. 받고 싶은 사람도 많았다. 


지금은 써도 줄 수 없는 사람도 있고 주기 쑥스러워 특별한 날에만 써 줘야 할 것 같고 답장을 주지 않아도 달라고 하지 못하고 그러려니 할 것 같다. 이제는 편지 공장이 될 수는 없겠지만 보낼 수 없는 편지는 그만 쓰고 특별한 날이 아니라도 나에게 중한 사람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고 싶다. 문득 떠올라 궁금해지는 사람에게 잘 살겠지 혼자 생각하고 잊어버리지 않고 편지를 쓰려한다.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해. 요새 어떻게 지내니? 문득 생각이 나서 편지를 쓴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없겠지만 p.24 편지 중에서 


작가의 이전글 물 떨어지는 어느 오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