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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이 Jul 16. 2019

프레임 속의 사람

앙코르와트의 떠돌이개와




세 번째 휴학을 하고 여행을 가는 사람은 여행에 미쳤거나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사람일 것이다. 아니면 둘 다 일수도 있고. 여행의 이유는 무엇이든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그 이유를 긍정할 수만 있다면. 하지만 그때의 나는 현실이 버거워 도망가는 한심한 패배자 같았고 세상 모두가 부러웠다. 그 자학에 가까운 생각이 여행을 마음 편히 즐기게 두질 않았다. 스스로 돈 벌어서 시간을 내서 가는 여행에 왜 반성이 필요했을까. 풍경은 평화로운데 속은 시끄러웠다. 어떤 계획을 가지고 간 것도 아니고 돈이 넉넉하지도 않으니 어느 곳을 가든 꼭 봐야 한다는 몇 개의 코스를 제하고는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내 처지와 다른 것을 보고 싶었는지 사진은 조용하고 고요한 것들을 주로 찍으려 했다. 사진 속에 담긴 그곳의 사람들은 웃고 있었고 평화로웠고 행복해 보였다. 돌아갈 날은 다가오는데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영원히 떠돌면서 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그런 역량이 안 된다는 건 또 잘 알고 있었다. 이 곳 사람들은 여유로워 보이는데 한국에서는 나이별 과업이 정해져 있고 완수하지 못하면 뒤쳐진 사람 취급하는 것 같고 또 내가 그런 사람인 것 같았다. 



그날은 두 번째로 앙코르와트에 일출을 보러 간 날이었다. 그건 해 뜨는 것을 두 번째 보는 것이 아니라 전날 해 뜨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전날 숙소 직원은 이 계절에는 일출을 거의 볼 수 있을 거라고 했지만 엄청난 구름 때문에 해가 뜨고 한참 지난 뒤에도 해가 이미 뜬지도 모르고 계속 기다렸었다. 대부분 볼 수 있다고 하니 다음날은 진짜 볼 수 있겠지 싶어 한 번 더 이른 시간에 출발하는 툭툭을 탔다. 툭툭 기사는 내가 타자마자 오늘도 구름이 많다고 했다. 툭툭은 어두운 씨엠립 도로를 달려 앙코르왓 앞에 나를 내려주었다. 내리는 순간 알았다. 어제와 똑같은 하늘이라는 걸. 나는 툭툭을 탈 때부터 삐뚤어진 마음으로 사진 각도가 잘 나온다는 스팟으로 가지 않고 그냥 편하게 앉아 아침을 먹을 장소를 물색했다. 경비가 넉넉하지 않아 아침밥으로 식빵과 귤을 샀다. 싸고 양 많은 걸 고르니 그 두 개였다. 앙코르트를 바라볼 수 있는 주변보다 살짝 높고 그늘지는 곳에 앉아 식빵을 먹기 시작했다. 역시나 이미 해는 떴는데 구름에 가린 듯했다. 하늘은 귤색과 식빵 색으로 얼룩덜룩했다. 비관의 기운이 해돋이에까지 뻗친 것 같아 심통이 난 나는 못된 표정으로 식빵과 귤을 뜯어먹었다. 


그때 어디서 떠돌이 개 한 마리가 와서 내 앞과 옆의 묘한 지점에 앉아 나를 봤다. 개는 눈빛으로 말했다. 나 빵 한 조각만. 얌전히 기다릴게. 개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서 개가 식빵과 귤을 먹을 수 있는지 의아했다. 짐작하기에 귤은 너무 시다고 느낄 것 같아서 식빵을 한 장 내밀었다. 개는 꽤 매너가 있었는데 식빵을 정확히 받아서 은근한 거리에 앉아 먹고 다 먹으면 또 눈빛으로 말했다. 하지만 나 먹을 빵도 없는데 자꾸 받아가니 내 팔자야-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때 해돋이가 끝난 것을 깨닫고 돌아나가던 관광객들이 나와 개의 사진을 찍는 것이 느껴졌다. 얼굴이 정확히 나오진 않을 거리였지만 살짝 당황했다. 이 개는 내 개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빵을 주고 나는 목이 막혀 귤을 먹었다. 



그러면서 생각해보니 사진을 찍은 사람은 아마도 평화로운 장면이라고 사진을 찍었을 것 같았다.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실상은 속 시끄럽고 돈 없어서 식빵을 사 온 여행자가 개에게 빵을 마지못해 나눠주고 있는 장면인 것이다. 게다가 계속 따라다니면 어쩌나 걱정했던 것이 무안하게 그 개새끼 아니 개는 내가 빵이 없다는 뜻으로 봉지를 들어 보이자 뒤도 한 번 안 돌아보고 자리를 떴다. 그 순간 어렴풋이 느꼈다. 멀리서 보는 풍경, 찰나의 순간을 고정시켜 바라보면 착각하기 쉽다는 것을. 내 마음대로 내 프레임 안에 들어온 장면과 사람들을 평화로워 보인다며 부러워하고 사진으로 남겼으니까. 그래도 완전히 깨닫지는 못해서 또 여행을 떠나고 또 떠나고서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속이 시끄러운 사람은 어떤 평화롭고 조용한 곳에 가도 여전히 자기 속만 들여다보고 있으며 여행이 그의 삶을 구원해 줄 수는 없다는 것을. 여행은 여행일 뿐. 그리고 남의 인생의 한 장면은 쉽게 프레임 속에 담을 수 있지만 그 안의 마음까지는 포착할 수 없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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