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이 Aug 18. 2019

반짝이는 얼굴의 비밀

씩씩하게 찬란하게




사진 수업을 들을 때였다. 누군가 선생님에게 어떤 계기로 사진을 시작하게 됐냐고 물었다. 어릴 때 선생님이 찍은 사진을 사진관에 인화하러 갔는데 사진관 아저씨가 잘 찍었다며 사진관 앞에 꽤 오랫동안 걸어주셨다고 했다. 그래서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그 사진을 보면서 내가 찍은 사진이에요! 자랑하고 싶었고 그 마음이 자연스럽게 사진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발전한 것 같다고 했다. 선생님의 눈은 어릴 때 사진관 앞을 지나가던 순간처럼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내용도 귀엽고 인상적이었지만 그 표정이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았다. 살짝 허공을 바라보는 찬란한 눈빛과 흐뭇하게 띄운 미소. 


언젠가 만났던 그는 대학원 준비할 때를 말했다. 지원했던 곳은 다 떨어지고 마지막 한 곳 발표만을 남겨뒀을 때 그는 다 떨어지겠구나 예상하고 전공책들을 다 빼서 묶어두고 이 길은 내 길이 아닌가 보다 생각했다고 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차마 버리지는 못하고 심란해하기만 하고 있었다고 했다. 마지막 한 곳에서 합격한 것을 확인하자마자 그는 바로 묶여 있던 끈을 풀고 책들을 다시 책장에 꽂으면서 정말 죽도록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했다. 살짝 감정을 누르면서 말하고 있었지만 그의 표정에서 그때 방 안에서 그가 얼마나 좌절하고 또 기뻐했을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눈빛 역시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그 얼굴들이 가끔씩 떠오르곤 했다.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굳이 궁금해하지 않기도 했다. 인상적인 이야기라서 기억에 남았다고 생각했을까.



얼마 전 버스킹을 하는 프로그램을 틀어 두고 노래를 들으며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헨리와 박정현이 노래할 차례였다. 그전까지 화면은 보지 않고 그저 노래를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던 나는 노래가 시작되자 화면으로 빠져들었다. 그 얼굴이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얼굴. 노래를 부르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그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헨리는 후에 인터뷰에서 그 노래를 부르는 순간 주변에 누가 있다는 것도 잊고 노래에만 집중했다고 했다. 그런 순간이 오랜만이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데 그 얼굴, 그 눈빛들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아마도 생의 찬란한 한 순간에 서 있는 사람의 표정을 내가 엿본 것이었나 보다. 



거기까지만 느꼈으면 좋았을 텐데 그걸 깨달은 순간 나는 그들이 부러워졌다. 내가 그랬던 순간이 있기나 했나 되짚어 보았다. 나도 반짝반짝 빛나는 얼굴이 되고 싶었다. 어떤 일을 간절히 원하고 추구하고 몰입해서 빠져드는 얼굴. 어느 순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냥 나를 살아있게만 하는데 급급했던 것 같아 괜스레 초라해졌다. 마주 볼 필요 없었던 진실을 깨달은 사람처럼 멍한 표정으로 조금 시원해진 바람을 맞으며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고 책을 읽었다.     


어떤 일을 열정적으로 추구한다는 것이 곧 그 일을 정말로 원하거나 그 일이 특별히 적성에 맞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정말로 원하지만 가질 수 없는 것을 단지 대신하기 위해 어떤 일을 아주 열정적으로 추구한다. 따라서 아주 간절히 품은 열망을 채운다고 해도 우리를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보는 게 무방하다. 열정적으로 일을 추구하는 모든 행위에서 중요한 것은, 추구하는 대상이 아니라 추구하는 행위 그 자체이다. *


내용이 나를 위로한 건지 시원해진 밤공기가 나를 위로한 건지 족욕이 나를 위로한 건지 나는 조금 씩씩해졌다. 내가 예상치 못한 경로로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만든 것 같았다. 왜 이렇게 나를 못난이로 만드는 생각으로 잘 휩쓸리는지. 삶을 살아내는 방식에 옳고 그름을 재단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그걸 위해 변함없이 노력하고 항상 열정으로 꽉 찬 삶이 옳은 거라고 무심결에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렇게 살지 못해 콤플렉스라고 생각하니 내 생각의 방향은 언제나 자석처럼 그 콤플렉스를 향해 돌아가나 보다. 그 습관처럼 흘러가던 방향을 그 문장이 다시 돌려주었다. 



너무 먼 곳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중요한 건 사실 기간이나 결과 같은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몰입하는 그 순간 자체가 중요한 걸지도. 어떤 순간은 영원이 되기도 하니까. 그런 순간은 나에게도 내가 미처 모르는 사이에 잠깐씩 다녀 갔을 것이다. 

조금은 편안해진 마음으로 그 얼굴들을 떠올린다. 언젠가 어디에선가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얼굴이 되기를 바라면서.        


* 영혼의 연금술 에릭호퍼 作

작가의 이전글 고백을 앞둔 이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