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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이 Aug 30. 2019

꿈과 꿈 사이에는 안녕이 있다

잠과 꿈과 글의 관계




꿈을 꾸고 깨면 눈을 뜨기 전에 눈알을 굴리며 어떤 꿈을 꿨는지 떠올려 본다. 그중에 유난히 강렬하거나 왠지 모르게 해몽이 있을 것 같은 꿈은 검색을 해보거나 일기에 쓴다. 꿈속에서는 꽤 재미있거나 흥미진진하거나 무서운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일기에 써보면 웃기다. 그날 생활을 하다가 기시감을 느끼며 이런 꿈을 꿨었지! 떠오를 때도 있다. 


시인은 가장 오래 기억되는 꿈은 태몽일 거라* 했다. 태몽을 제외하고 내 생에서 제일 오래 기억하고 있는 꿈은 5-6살 무렵 꿨던 악몽이다. 꿈에서 도깨비가 나를 잡으러 왔다. 혼자 방에서 자고 있던 나는 맨날 들고 다니던 이불을 질질 끌고 엄마가 자고 있는 건너편 방으로 갔다. 나는 엄마 손을 잡고 다시 내 방으로 와서 불을 켰다. 방에 도깨비는 없었다. 엄마는 내가 잠들 때까지 옆에 앉아 나를 토닥여 주었다. 어디부터가 꿈이고 어디부터가 현실인지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기억하는 한 제일 어릴 때의 장면인 듯싶다. 그 후로 나는 수도 없이 이상한 꿈을 많이 꾸었다. 웃긴 꿈, 재밌는 꿈,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오는 꿈 그런 꿈은 거의 꾼 적이 없었다. 늘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이 안 가는 극사실주의 꿈이거나 악몽뿐이었다. 악몽은 거의 늘 비슷했다. 



#1. 아무도 없는 깜깜한 초등학교 복도와 계단을 도망치듯 내려가고 있다. 다들 교실 안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데 나 혼자 내 교실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다. 1층부터 6층까지 올라가 보거나 정문 쪽부터 후문까지 걸어가 본다. 학교의 모습은 꽤 사실적이다. 그때 다니던 학교 모습과 거의 비슷하다. 어느 교실에 가서 두드려 보지만 여기는 네 교실이 아니라고 한다. 언제나 학교는 어둡거나 흑백이고 사람들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다. 

#2. 전쟁이 나서 온통 폐허가 된 벌판을 걸어가고 있다. 갑자기 어디선가 폭격 소리가 들려 근처 참호로 숨는다. 몸은 흙투성이가 되고 누군가 나를 발견할까 봐 더 깊숙이 몸을 웅크린다. 장면이 바뀐다. 여전히 전쟁 중인 듯하고 나는 도망치고 있다. 아무도 없고 어두운 병원 건물 어딘가 환자용 베드 뒤에 숨어서 떨고 있다. 사람은 한 명도 등장하지 않지만 나는 계속 누군가에게 내 정체를 들킬까 봐 숨소리도 제대로 못 내고 있다. 


특히나 두 번째 꿈은 꽤 자주 꾸고 장소나 내가 하는 행동이 거의 똑같아서 전생의 장면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딱히 큰 고민이 없어 생이 편안하다 느낄 때조차도 이 악몽들은 번갈아가면서 나를 찾아왔다. 같은 꿈을 매번 꾸어도 꿈에서 느끼는 감정은 늘 처음과 같았다. 나는 늘 교실을 찾지 못해 걱정하고 답답했으며 누군가에게 잡혀 죽을까 초조하고 너무도 두려웠다. 그래도 꿈속에 어떤 끔찍한 고초를 겪어도 깨면 나는 안녕했다. 어느 날은 꿈속이 감정이 너무 지독해서 단지 그 꿈들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 그것만으로 위로가 되었다. 이런 시절에는 낮잠을 의식적으로 피했다. 낮잠을 자면 그 외에도 온갖 견디기 힘든 악몽들이 쏟아졌다. 자는 동안 피로를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더 피곤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밤의 잠은 피할 수 없었다. 악몽을 꿀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 지친 날에도 밤에는 잠을 자야 했다. 이 꿈은 밟고 건너야 다시 나는 안녕의 세계로 건너갈 수 있었으니까.



이 사실을 그 시절에 깨달았던 건 아니다. 그 시절에는 비록 악몽은 자주 꿨을지라도 머리만 대면 잠이 들어 불면증이 왜 생기는지 이해도 하지 못했었다. 그 후 불면이 계속되던 날에야 알았다. 악몽이라도 꾸고 싶었다. 눈을 감고 아무리 오래 누워 있어도 나는 아무 꿈도 밟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안녕하지 못했다. 어쩌다 까무룩 잠이 들어도 금세 깨어나 현실이 멀쩡한지 방 안을 둘러보곤 했다. 그렇게 흔해 빠진 잠과 꿈이 누군가에게는, 어느 순간에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그 날들을 지나는 동안 중요한 고민과 쓸데없는 생각과 많은 울음과 수많은 글이 있었다. 처음에는 혼자 일기를 썼다. 매일 쳇바퀴처럼 같은 생각 속을 맴돌았다. 그러다 글쓰기 수업을 신청했다. 3개월 동안 매일 3천 자 정도 선생님이 주는 주제로 글을 써서 보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글에 대해서, 또 나에 대해서 이야기도 했다. 그 전에도 글을 쓰긴 했지만 누군가에게 보여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글을 쓰는 나 자신에게도 숨기고 싶어서 암호처럼 쓴 내용이 많았다. 그 수업을 신청했던 이유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무슨 일을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알고 싶어서였다. 그런 일이 일어나기 힘들다는 걸 분명 알면서도 글쓰기 수업이 끝나면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분명히 알고 행동하는 극적인 변화를 바랐다. 역시 수업이 다 끝나도 여전히 나는 게을렀다. 뭔가 해보고 싶은 것이 떠올라도 행동으로 옮기는데 몇 날 며칠이 걸렸고 옮기고 나서도 확신이 없어 또 멈칫했다. 머리로는 예상했지만 마음은 솔직히 실망한 그런 날들이 이어졌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단 한 번도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가 느껴졌다. 꿈이 다양해졌다. 고래와 같이 바다를 수영하기도 하고 사람들과 열기구를 타고 신나게 여행하기도 하고 무한도전 멤버들과 노래방에 가서 미친 듯이 웃는 꿈을 꿨다. 꿈에서 울다가 깬 적은 많아도 웃다가 깬 적은 처음이었다. 낮잠을 자도 악몽을 꾸지 않았다. 한가하고 날 좋은 주말 오후 점심을 먹고 편안히 자는 낮잠의 묘미를 그제야 알았다. 허구한 날 꾸던 그 똑같은 악몽, 그 악몽도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어느 날 꿈에 나는 또 초등학교에 서 있었다. 복도 창문이 열려 있어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고 환했다. 쉬는 시간인지 아이들이 다 복도로 뛰어나와 장난을 치며 떠들썩했다. 계단을 올라 복도 초입에서 살짝 멈칫하며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누가 내 등을 톡톡 두드렸다. 뒤를 돌아보니 남자아이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안녕? 밥 먹으러 가자. 언제나 그랬듯 아침에 잠에서 깨 눈알을 굴리면서 지난밤 꿈들을 떠올려보다 그 아이가 떠올랐을 때 어렴풋이 알았다. 이제 그 악몽은 다시는 꾸지 않겠구나. 


그러니까 꿈을 꾸고 깨면 나는 안녕했다. 그 꿈들 덕에 내속에 덮어두고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고 울고 웃었다. 도저히 나 스스로도 나를 믿을 수 없던 나에게 조금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꿈은 다른 사람이 조금 더 안정적인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나에게 말해주는 것만큼이나 강력한 믿음이 되어주었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눈알을 굴리며 꿈을 떠올린다. 꿈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 잠은 왠지 모르게 아깝다. 가을방학의 노래처럼 ‘꿈도 없이 열몇 시간을 자면 뭔가 손해 본 느낌’이 든다. 재밌는 꿈이 떠오르면 적어 둔다. 다음에 보면 우스울 것이다.  



*박준 뱀사골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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