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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이 Oct 16. 2019

숨어 있던 상처와 만나는 점직함

비겁한 과거를 회상하며




많은 것을 알고 지낸 사람이 있다. 기간으로만 보면 5년 정도. 하지만 같이 일하는 사이였기 때문에 좋든 싫든 함께 보낸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가 몇 년 전 내가 정서적으로 힘들 때와 비슷한 감정과 상황을 지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개인적으로 느꼈던 감정들과 일들을 이야기해주다 보니 친구와도 잘하지 않는 이야기까지 나누게 되었다. 그래서 아마 나는 그의 과거를 거의 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올해 초 근무지를 옮기면서 물리적으로 멀어지게 됐고 오랜만에 사적으로 만나 대화를 하게 됐다. 미뤘던 대화가 많아 한참을 말해도 이야깃거리가 바닥나지 않았다.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그가 이 일은 동생만 알고 있다고 조금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 친하던 한 친구와 오해가 생겨 다 같이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전부 멀어지게 됐다고 했다. 바로 몇 시간 전까지 웃으며 이야기하고 놀던 친구들과 전부 어색한 사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반의 다른 친구들과 잘 지내서 학교 생활하는 건 크게 문제는 없었지만 가끔 집에 와서 울기도 했다고 했다. 그렇게 학교는 아무렇지 않게 다녔지만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는 졸업하고 연락을 잘 안 하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오래 알고 지낸 친구가 많이 없는 것 같아서 가끔 좀 씁쓸할 때가 있다고 했다. 나는 흠칫했다. 처음에는 그토록 오래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에 놀랐고 그다음으로는 내가 그 앞에서 조잘조잘 떠들었던 이야기들을 돌아봤다. 그 앞에서 고등학교 친구들이 어쩌고 저쩌고 많이도 떠든 것 같았다. 



그리고 내 고등학교 때 일이 떠올랐다. 나도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 입을 뗐다. 1학년 학기 초에 10명씩 무리 지어 친하게 지냈다. 아무 공통점이라고는 없고 단지 나이가 같다는 이유로 같은 반이 되고 같이 다녔으니 모든 게 잘 맞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 불만들을 퍽 잔인한 방법으로 해결했다. 누군가 어디서고 어떤 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하면 다들 그런 것 같다고 하고 그 즉시 그 친구와는 말하지도 않고 같이 다니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나도 아무 생각 없이 동의하고 행동했다. 잘못된 행동이라는 생각조차도 못했다. 어차피 학기 초였고 그 친구는 다른 친구들과 금세 친해져 아무렇지 않아 보였으니까. 두 번째 똑같이 그런 일이 반복됐을 때 그제야 의아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 만큼 그 친구가 잘 못 한 걸까? 


그렇지만 비겁한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무리의 의견에 동의했고 친구를 외면했다. 그리고 또 나만 생각했다. 사소한, 내가 미처 예상치 못한 잘못으로 나도 무리에서 소외될 수 있겠구나. 그 시절에 친구들의 무리에서 떨어진다는 건 우주 저 밖으로 밀려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로 느껴졌다. 게다가 나는 같은 중학교를 나온 동네 친구들과 다른 더 먼 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더 두려웠다. 학교에서 아무렇지 않게 친구들과 친해지려 애쓰고 집에 와서 중학교 친구들과 타자로 ㅋㅋㅋ를 치며 채팅을 하면서 울었다. 그리고 친구들이 만나자고 하면 물론 놀고 싶기도 했지만 빠질 수가 없었다. 혹시나 다음 날 나를 모른 척할까 두려웠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집에서 혼나는 일이 잦아졌고 괜히 내 상황을 이해 못하는 엄마가 미웠다. 상처 받은 친구들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나 역시 두려웠다. 



돌아보면 나에게도 해당될 수 있는 일이었고 단지 운이 좋아서 그런 상처를 겪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았다. 그와 내가 같은 장소와 시간에 있지는 않았지만 그에게 괜히 미안했다. 나처럼 그를 외면했던 친구들도 마냥 편안한 마음은 아니었을 거라고 마음 한 편에 계속 미안함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말했다. 막상 말을 해 놓고서 그가 내 어쭙잖은 얘기에 오히려 상처 받지 않을지 걱정했다. 우리가 그동안 나눈 이야기에 수많은 상처들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말 못 한 이야기였다면 꽤 큰 상처였을 테니까. 다행히 그는 내 이야기를 오해하지 않았고 그런 일들이 생각보다 비일비재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 공간에 오래 함께 있어야 했던 그 시절의 힘듦을 이제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학창 시절이라는 게 지나고 나서 떠올리니 좋았던 것만 되짚고 상처 줬던 기억은 쉽게 잊어버려 미화되기도 하는 것 같다. 사실 그때 매일 긴 시간 집보다 오래 가깝게 있어야 했던 친구들에게 잔인했던 순간들이 있었는데. 그 시절을 지나며 내 진짜 모습을 알게 되었다. 사실 나는 그렇게 성정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상황에 쉽게 휩쓸리고 나만을 걱정하는 그저 그런 인간이라는 걸. 그 사실이 지금도 나를 따라다닌다. 이게 내가 받은 벌일까 싶기도 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덕에 내 말과 행동을 자주 돌아보게 된다는 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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