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이 되었는데도 나의 평소 먹는 음식들은 달라질 것이 없었다. 건강하지 않다고 하긴 어렵지만 그저 성의없는 음식들로 내 식탁을 채웠다. 자취 5년 차가 되니 모든 것이 귀찮게 느껴지고 일이 바빠 내가 뭘 사뒀는지도 잊어버려 얼마 전 냉장고와 싱크대 상, 하부장 청소를 하며 유통기한이 지난 파스타 면이나 소스류들을 한껏 폐기했다. 모두 다 애매한 용량이 남아서 버리는 마음도 시원하지 않고 찝찝했다. 그러다보니 냉장고는 텅 비었고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난 아무거나 먹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지난주, 오랜만에 엄마 집에가 저녁을 먹었다. 분명 전날 간다고 연락을 했는데 어떻게 하면 고기반찬과 여러 밑반찬들이 식탁에 가득 준비가 되어있는지 알 수가 없다. 갈비와 여러 반찬들을 먹고 후식으로 딸기까지 먹고 나니 배가 터질 것처럼 불렀고 몸이 나른해졌다. 게을러진 나는 우리 집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엄마가 반찬을 싸는 것을 구경했다. 김치는 세 종류가 있었으며(갓김치, 배추김치, 무김치), 나물 무침에 장조림, 쥐포와 연근 조림 등 커다란 가방 두 개에 가득 담기고 그 위로 체리와 딸기가 담겼다. (우리 고양이들 간식도 가득 있었다.)
내가 해 먹는 걸 좋아하던 시절, 파스타 같은 음식들에 빠져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쉬는 날마다 집에서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는데 바질페스토나 엔쵸비, 치즈 등이 자취방 냉장고에 늘 있었다. 외국 식재료와 다양한 치즈에 눈을 뜨게 된 순간이었다. 낯선 식재료들을 이용해 음식을 먹으면 불안이 호감으로 다가오던 그 순간이 설레고 즐거웠다. 한식보다 다채로워 보이고 멋져 보이기도 하고 간단하기도 한 음식에 빠져 한동안은 한식과 엄마의 반찬을 등한시했었는데, 이제는 몸이 밥과 국을 찾고, 제철 나물 반찬을 찾는다. 보다 익숙한 맛과 속이 편한 요리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엄마에게도 밥에게도 참 미안한 과거이다.
엄마의 반찬은 일주일이 넘어서자 절반이상이 줄었다(그래도 김치는 가득해서 아직 마음이 든든하다.). 아침에 늘 계란밥 혹은 만두를 먹었는데, 한동안 엄마가 싸 준 오징어국에 밥을 먹으니 몸이 따뜻하고 든든해 아침의 기분이 새로웠다. 그래서 국을 다 먹고 내가 끓이려니 참, 집엔 아무것도 없었다. 한식의 기본인 마늘과 파는커녕 심지어 다시다도 없는 불쌍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정말 맛없는 두부찌개를 한번 끓여서 열심히 먹고는 바로 조미료를 샀다. 현대인의 냉장고에 가장 필요한 것이라면 조미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다음은 들깨 뭇국을 끓였다. 들깨의 유통기한이 이미 지났다는 것을 넣기 직전에 알아버렸고, 결국 이날도 들깨 없는 그냥 두부 뭇국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무가 달아서, 다른 조미료들이 있어서 맛은 나쁘지 않았기에 반숙 계란을 얹은 밥에 국 한 그릇을 아침으로 먹었다. 내가, 오로지 나를 위해 만든 따뜻한 국이 주는 힘은 컸다. 속이 따뜻해져 현관문을 닫을 때엔 오늘도 잘 지낼 거라는 확식이 있었다.
내면이 단단하게 자리 잡으려면 나를 아껴야 한다. 난 나를 사랑해, 하기 위해선 내겐 좋은 먹을거리를 때에 맞춰 몸에 넣어주어야 한다. 가급적 예쁜 그릇에, 10분이라도 꼭 자리에 앉아서 먹어야 한다. 생각보다 하루 중, 나를 위한 시간을 내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늘 시간에 쫓기고 타인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니깐, 내게 있어 요즘 아침을 먹는 10분은 너무 소중하고 따뜻한 시간이다. 이상하게 예쁜 그릇을 더 사고 싶은 마음도 함께 생겨서 조금 곤란하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