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만일까,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옷을 사지 않았다. 옷뿐 아니라 가방도 사지 않았고 신발은 운동화가 낡아 떨어져 올봄에 새 운동화를 사고 더 이상 사지 않았다.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동경으로 시작한 간결하고 사지 않는 삶은 꽤 잘 맞았다. 불필요한 사치를 줄이고 쓰지 않는 것은 나누고 버렸다. 사실 주머니 상황이 좋지 않아 반강제로 시작한 미니멀 라이프다. 덕분에 사지 않고 가벼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 중이다. 옷을 사지 않은지 꽤 오래되었는데, 아직도 계절마다 옷 정리를 할 때면 여전히 옷을 버린다. 여전히 미련을 다 떨쳐내진 못 한 것이다. 그렇게 옷장을 가볍게 하는데 거의 2년이 걸렸다. 이 여름이 지나고 다시 옷 정리를 할 때, 아마 이번 여름에 입지 않았던 옷은 또 사라질 수 있다. 좋아하는 검은색 티셔츠는 고양이와 살면서 구석에 쳐 박혀 있는데, 잠옷으로도 입지 않아 정리 대상 1번이다. 그런데 내가 오랜만에 새 옷을 샀다. 마음에 쏙 드는 남색 계절의 스트라이프 티셔츠다.
여름 하면 떠오르는 스트라이프 티셔츠, 얼마나 청량하고 예쁜가. 참 좋아하지만 역시나 잘 사진 않았다. 대부분 새 옷을 사려면 며칠 정도를 고민한다. 설령 그게 만 원짜리 티셔츠라 할지라도. 그렇게 고민의 시간을 거치면 보통은 사고 싶은 마음이 줄어들어 사지 않는다. 불필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티셔츠는 며칠 정도 두고 봤을 때, 이만 원대라는 합리적인 가격과 스트라이프지만 세 가지 색이 섞여 있는 너무 흔한 디자인은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튀는 디자인도 아니었다. 평소에 입기도 괜찮고 캐주얼한 약속에 입어도 좋을 것 같았다. 적당한 길이와 크기도 좋았고, 무엇보다 너무 취향에 맞았다. 며칠 고민을 하며 두고 봤더니 마침 쇼핑몰의 휴가 기간이었다. 나는 일단 주문을 하고 두고 보기로 했다.
물건을 샀을 때 찝찝한 마음이 드는 물건들이 있다. 그런 것들은 그런 마음이 들 때 바로 환불을 하는 편이 좋다. 소비를 할 땐 신중하면서도 즐거워야 한다. 내가 이 물건을 사용할 때를 상상하면 설레어 두근거리고, 이것과 오래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한다. 사람 사이뿐만 아니라 물건과도 잘 맞아야 나의 생활이 즐겁고 오래간다. 그래서 사기 전에 그 기분을 잘 고려하는 편인데 가끔 사고 나서 그 기분을 느낄 때도 있다. 그때는 정말 고민하지 말고 사기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내가 소비를 줄이며 깨달은 하나의 팁이다.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주문을 하는 순간까지 즐거웠고 두근거렸다. 쇼핑몰 휴가 기간이라는 생각의 시간이 나에게 주어졌다. 이 기간 동안 만약 소비를 후회한다면 나는 얼른 취소를 선택하기로 했다. 예전이라면 택배가 늦어지는 것에 대한 불만과 고민은 배송만 늦출 뿐! 이라며 자신을 타박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식의 소비는 하지 않는다. 원하는 물건일수록 기다려야 하고, 그 기쁨이 몇 배가 될 것을 알고 있다.
구매한 스트라이프 티셔츠는 여전히 원하는 마음이 커서 주문 후 1주일째 배송을 기다리고 있다. 이래저래 일을 하다 보니 기다리는 시간이 금방 간다. 어제 택배 발송을 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마 오늘 퇴근을 하고 오면 택배 박스가 나를 기다릴 것이다. 나에게 있는 청바지와도 잘 어울릴 것 같고, 진한 색이니 흰 바지와도 잘 어울릴 것 같다. 두근두근, 옷을 기다린다. 오랜만에 즐거운 소비의 뿌듯함과 즐거움이 가득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