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가을 교토 #2
11월의 교토는 조금 쌀쌀하지만 많이 춥지는 않았다. 하늘이 맑았고 바람은 조금 불었지만 호스텔의 자전거를 대여해 다니기로 했다. 첫 번째 장소로 가는 길에 카모 강을 건넜다. 카모 강은 교토의 유명한 강으로 이 지역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다. 어느 지역이든 강이 있다면 그곳은 쉼터가 되고 만남의 장소가 되는 듯하다.
내가 사는 지역에도 큰 강이 있다. 나의 본가는 카모강같은 강의 곁에 있었는데, 어릴 적부터 대학교를 졸업하고 자취를 하기 전까지 그 강은 내 생활의 일부였다. 봄과 가을엔 꽃과 단풍을 보여 산책을 아침저녁으로 하고 여름이 되면 배드민턴을 치고 동네 친구들과 저녁 먹은 후 모여 수다를 떨었다. 겨울엔 걷기는 어려웠지만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이면 둑에 내린 눈을 구경하러 가기도 했다. 그런 추억들을 교토 사람들도 가지고 있을까.
한 귀엽고 아담한 디저트 카페에 도착했다.
가게는 작지만 이층으로 되어 있었고, 일층은 케이크와 디저트를 판매하고 있었고 이층에선 먹고 갈 수 있는 작은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었다. 수많은 디저트들이 쇼케이스에 진열되어있었다. 단것을 좋아하지만 평소엔 카페에서 파는 비싼 디저트는 자주 사 먹을 수는 없다. 주로 편의점 과자를 먹을 뿐.
하지만 여행을 왔고, 이렇게 예쁜 곳을 방문해서 좋아하는 디저트를 먹을 생각하니 이게 행복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고민을 하다가 미리 블로그로 보며 후보에 넣어둔, 꼭 먹어보고 싶었던 처음 보는 모양의 티라미수와 커피를 주문했다.
티라미수는 내가 아는 맛과는 조금 달랐다. 커피 맛도 나고 화이트 초콜릿 맛도 나는 시트에 위에 영롱하게 빛나는 부분이 커피 맛이 났던 것 같다. 케이크 주변으론 카카오 닙스가 예쁘게 두르고 있었는데 쌉싸름한 맛이 단맛을 더 극대화시키는 듯했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케이크를 오전부터 먹다니 호사가 따로 없다.
커피는 조금 커다란 볼을 연상시키는 상잔에 나왔다. 항상 머그컵이나 호텔 커피잔 같은 곳에 커피를 마셨지만 이렇게 특별한 잔은 처음이라 괜히 두근거렸다.
일반적인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디저트 카페이지만, 이 카페는 작은 소품들로, 조금은 특별한 레시피로 나의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 여행을 하는 내 마음이 더 풍요로워 그런 것일까, 하루하루가 다 만족스럽고 즐거웠다.
과자로 만든 과자집이 너무 귀여웠다.
다음 나의 간식은 찹쌀떡이다.
앞서 간 디저트 카페 포 스팅을 본 블로그에서 이 찹쌀떡 집을 보고 여기는 꼭 와야겠다 생각을 했다. 도착했을 땐 역시 지역 맛집답게 많은 현지인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줄을 서고 기다리다 주문을 하고 포장과 계산을 한다. 제일 유명한 건 콩이 박혀있는 찹쌀떡이니 이건 꼭 먹어야 하고, 난 그 찹쌀떡을 포함에 가을 시즌에 나온 밤이 들어있는 찹쌀떡과 녹색의 찹쌀떡을 구매했다. 떡을 구매하고 나니 바람이 조금 세졌다. 하지만 춥지는 않아서 카모 강에 가 떡을 먹기로 했다. 일본 편의점엔 녹차나 우롱차를 많이 판다. 우롱차를 하나 사고 벤치에 앉아 떡을 집어 먹었다. 떡 안엔 달달한 팥앙금이 가득 들어있었고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의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셋 중에 가장 맛있는 건 역시 콩이었다. 인기 있는 이유가 있구먼..! 콩을 싫어한다면 이해 못 할 맛이지만 콩이 들어간 음식은 은은한 단 맛과 고소함, 약간의 식감이 느껴져 너무 맛있다. 하나만 먹어도 배 부를 큰 찹쌀떡을 세 개를 홀랑 먹고 쌉싸름한 우롱차를 마시고 나니 행복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강가에 앉아 찹쌀떡 먹는 것은 한국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거기선 왜 좀처럼 그럴 마음의 여유가 나지 않는지 모르겠다.
잠시 비가 내렸었나 보다. 자전거를 타고 여기저기 구경을 하고 있는데 한쪽에서 소란스러움이 들려왔다. 여자아이 두 명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엄마로 보이는 두 명의 여성이 작게 환호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아이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흐려진 하늘에 아주 선명한 무지개가 떠 있었다. 그것도 꽤 길게.
무지개를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나고 저렇게 긴 무지개는 더더욱 기억이 나질 않았다. 뜻밖의 선물을 받은 듯 무지개는 엄청 선명하게 보였다. 하늘이 맑았으면 더 좋았을까, 조금 아쉬울 뻔했지만 하늘이 어두웠기에 무지개가 더 선명해 보였지 않을까. 그래서 저 아이들이 발견을 할 수 있었고 우리 모두 뜻밖의 행운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한동안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혹시 비가 오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숙소에 자전거를 반납하고 걸어 다니기로 결정했다. 그러다 날씨가 조금 쌀쌀해서 일본의 프랜차이즈 카페로 들어가 달달한 커피를 주문했다. 토피넛 어쩌고 하는 이름이었던 것 같다. 아메리카노만 마시다 이렇게 기분 좋은 날이면 고칼로리의 커피를 마시게 된다. 날씨는 쌀쌀하고 가게는 조용하고 커피는 달달하고, 약간의 피로가 풀리는 듯했다.
이 근처의 맛집을 찾다가 구글 평점이 높은 돈가스 집을 발견했다. 딱히 먹고 싶었던 것이 없어서 즉석에서 정하고 가게로 갔다. 6시쯤 도착했을 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번화가에 위치하고 있어서 일 수도 있고 다들 나처럼 구글을 보고 맛집을 찾아온 것이지 않을까. 30분 정도 기다렸다. 낮보다 춥지는 않았고 줄을 서 있는 내내 앞뒤로 일본인들의 대화 소리와 간간히 중국어와 영어도 들려왔다. 조금 신기해져서 혼자 줄 서서 기다리는 내내 지루하지는 않았다.
친절한 직원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착석한 후 주문을 했다. 등심과 안심이 함께 나오는 돈가스와 생맥주를 주문했다. 튀김은 무조건 생맥주, 저녁엔 무조건 생맥주! 깨를 갈아 소스를 붓고, 갓 튀겨져 나온 따끈한 돈가스 한입, 생맥주 두 모금. 이것은 환상의 조합이다. 난 일본의 돈가스와 새우튀김(에비후라이)를 참 좋아한다.
고등학생 때 오사카에서 새우튀김을 처음 먹었을 땐 정말 당황했었다. 느끼한 튀김 위에 마요네즈를 뿌려주는 것이 아닌가. 아니 왜 이 느끼한 튀김에 마요네즈를 뿌려주는 거지...? 하며 당황스러운 맘을 가지고 먹었고 실망했던 것은 나의 편견이었다. 난 그때부터 튀김은 마요네즈를 곁들인다. 돈가스는 빵가루가 많이 붙어서 마요네즈 보단 깨가 들어간 소스나 겨자가 잘 어울리지만 사실 간이 잘 되어있어서 그냥 먹어도 충분히 맛있고, 맥주를 곁들이면 더 맛있다. 일본은 양배추를 참 얇게 썰어 묽은 소스를 주는데 상큼한 소스가 참 잘 어울린다. 어느 가게를 가도 양배추 샐러드는 참 맛있고 오카와리(리필)도 해주어서 돈가스를 먹지만 야채도 많이 먹었다고 죄책감을 덜 가질 수 있다.
어느 하나 남기지 않고 다 먹고 흡족한 모습으로 가게를 나와 편의점에서 맥주를 하나 더 사서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엔 외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거실 같은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나 홀로 조용한 파티를 했다. 맥주를 마시며 블로그 일기를 쓰며 하루를 정리하는 나다운 파티. 여행을 빌미로 한 휴식이다. 한국에선 쉽게 못하는 카페에서 디저트 먹고 비싼 외식을 하고 걱정 없이 사는 것. 그럴 거면 왜 여행을 갔냐, 유명한 거기 안 갔냐, 하는 물음에 더 좋은 곳 가고 더 좋은 추억 만들었다 할 수 있다. 난 오늘 먹었던 카페의 디저트가 교토 대표 음식보다 좋았고, 카모 강에서 먹었던 찹쌀떡이 유명한 음식점보다 좋았다. 수수하게 자연스럽게 그곳에 스며드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