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gi Jul 13. 2022

낯선 공기를 찾아

17년 가을 교토 #3

 아침 일찍 일정을 시작하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첫 일정은 작은 카페에서 라떼를 먹는 것으로 시작하지기로 했다. 숙소는 참 좋은 위치에 있었다. 교토의 시내 쪽이니 당연하겠만 어딜 가든 걸어서 혹은 자전거로 쉽게 이동이 가능했다. 이 카페는 특이한 곳에 위치한 것으로 유명했다. 주차장 안 쪽이라 해야 할까, 끝이라 해야 할까. 모르고 갔으면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겠다 싶은 곳에 있었다. 아침 커피를 주문하고 카페를 구경했다. 매우 작은 공간에서 커피를 내려주신다. 카페를 하는 것이 꿈이었던 시절 이렇게 작은 카페를 상상하기도 했다. 야외에 의자를 몇 개 두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잠시 들러 커피를 마시는 곳. 커피는 금방 나왔고 아쉽지만 다음 일정으로 얼른 자리를 떴다. 지금 생각하니 손님이 없던 그 한적한 시간을 그냥 지나쳐 온 것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커피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느긋한 여행객으로 그곳에 조금 더 머물렀어도 좋았을 듯하다.





다음 행선지는 우지였다. 목표는 타마고 산도(계란 샌드위치). 여행 전 찾아본 한 블로그에서 추천하는 글을 읽고 번거롭더라도 여기는 꼭 가야겠다고 정했다. 조금 일찍 도착해 마을을 잠깐 둘러보았다. 이곳은 말차가 유명한 지역이라 하는데 확실히 말차와 관련된 제품을 파는 상점들이 꽤 많았다. 날씨가 흐려 산책의 기쁨을 크게 느끼지 못해 오픈 시간에 맞춰 바로 가게로 갔다. 이미 몇몇 손님들이 있었고, 나도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판을 살폈다. 신기했던 것은 처음 일본 카페에 왔을 땐 왜 카페에 샌드위치 외의 파스타나 카레를 팔지.. 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카페에선 샌드위치, 허니브레드, 머핀 등 달달한 빵과 디저트만 판매하는데 왜 카페에서 식사를 하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여겨졌다. 지금 생각하면 카페란 공간은 커피만 마시는 것이 아닌 여러 가지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인데 말이다.

두 번째로 신기했던 것은 남자들이 카페에서 파스타를 먹는다는 것이다. 굉장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남자 셋이서 점심시간에 카페에서 파스타와 샌드위치를 먹는 장면을 난 당시 아직 우리나라에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조금 신기하고 재밌었다. 다른 손님들이 먹는 메뉴를 슬쩍 살피며 잠시 흔들렸지만 이날이 아니면 또 못 먹을 타마고 산도를 먹기로 하고 주문을 했다. 아기자기하고 아늑한 카페에 앉아 창 밖의 풍경을 구경하고 있으니 저절로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듯했다. 기다린 나의 샌드위치가 나왔다. 부드러운 빵 속에 보기만 해도 뚱뚱하고 부드럽게 말린 계란이 들어가 있었다. 따뜻하고 약간의 짭조름한 계란과 부드러운 빵을 한입 먹었을 때 머리가 찌릿찌릿 한 감동을 느꼈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맛있게 먹을 때 머리가 찌릿찌릿한 감정을 느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타지에서 맛있게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그렇게 나 혼자 전투를 치르듯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은 후에야 다시 마음이 느긋해졌다.








다시 교토로 돌아와 또 카페로 향했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카페지만 외국 여행을 가면 카페를 더 많이 찾게 된다. 여행지에서 느긋한 일상 보내기를 좋아한다. 일본 카페에선 어느 카페를 가던지 핸드드립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이 좋다. 요즘에야 우리나라 카페에서도 핸드드립 커피를 종종 찾아볼 수 있지만 과거엔 찾기가 어려웠다. 특히 서울이나 수도권이 아닌 지방 카페에선 핸드드립을 접하기 어려워 드립 커피를 좋아하는 나는 일본에서 카페 가는 것이 너무 좋았다. 깔끔함 인테리어와 무엇보다 나무 테이블이 가게 안의 분위기와 너무 잘 어울리고 예뻤다. 케이크와 커피를 주문한 뒤 자리에 앉았다. 이곳은 노트북도 사용이 안 되는 작은 카페였다. 난 어차피 홀로 노트북도 없는 여행객이기에 책을 펴 읽거나 노트를 끄적이며 시간을 보낼 예정이었다. 혼자 하는 여행에선 꼭 작은 책과 노트, 이어폰은 필수인 셈이다. 당근 케이크도 너무 귀엽고 주문한 커피도 좋았다. 무엇보다 할 일을 가지고 카페를 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쉬러, 특별히 할 것 없이 그곳을 가는 것이 좋았다. 나의 여행에선 이런 것이 계획인 셈이다.



 교토엔 케이분샤라는 서점이 있다. 꽤 유명한 이 서점은 가기 전 블로그를 보았을 땐 책 이외에 여러 가지 잡화도 구경할 수 있는 곳인 듯했다. 시내 중심가가 아닌 일본스럽게 주택가에 위치해 있었고 맨션이나 다른 개인 가게들도 많았다. 그런 동네를 거닐다 보면 외국에서 살고 싶은 생각에 빠지곤 한다. 서점은 아기자기하고 귀여웠다. 실내엔 다양한 책들이 있었는데 일어를 읽을 수 없어 그림이나 사진이 있는 요리책 같은 것들을 살짝 보았다. 옆 구역엔 그릇이나 가방 같은 소품들도 팔고 있었는데 귀여운 것들 천지라 어지러울 정도였다. 딱히 필요한 물건은 없어서 구매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가게가 전체적으로 마법의 공간 같았다. 내가 외국인이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오래된 듯 포근한 분위기와 다양한 구성품들이 잘 어울려서 아름다웠다.


 동네를 계속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딱히 계획이 없었기에 그냥 설렁설렁 걸어 다녔다. 걷다 보니 큰 은행나무가 멋졌던 일본 학교도 보고 드라마 속에서 보던 아파트도 보고 주택가 골목에 들어서선 집집마다 작은 화단을 구경했다. 목조 주택을 보면서 참 아기자기하단 생각을 했다. 작지만 예쁜 꽃이 심긴 화단과 옆의 주차장까지 오밀조밀하게 만들어진 나만의 집!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골목 틈틈이 카페와 음식점 등 작은 가게들도 많았다. 날이 흐려 사진은 예쁘게 나오지 않았던 것 같아 찍기를 포기했던 것 같지만 차분히 거리를 구경할 수 있었고, 비가 올 듯 한 날 특유의 조금 어둑한 분위기가 좋았다.



돌고 돌아 저녁을 먹고 숙소에 들어가기로 했다. 11월의 저녁은 꽤나 추워서 따뜻한 음식이 생각났다. 하루 종일 커피를 많이 마시기도 했고 밀가루와 디저트만 먹어서 밥이 먹고 싶었다. 돈가스 덮밥(가츠동)은 평소 워낙 좋아하던 음식이라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가츠동 집을 찾기 위해 거리를 어슬렁거렸다. 마침 시내에 있었기에 그 흔한 가츠동 집 하나 없겠어?라고 쉽게 생각해 거리를 둘러보았으나 간판에 크게 적혀 있지 않은 이상 찾기 어려운 법이란 것을 알았다. 돈가스 집으로 갔다가 덮밥류가 없을 가능성도 있으니 쉽게 시도를 못 하겠고 직원에게 물어보자니 뭔가 부끄러웠다. 급히 구글 지도를 켜서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조금 먼 곳에 꽤 유명한 곳이 있는 듯했고, 더 이상 헤매기 싫었던 나는 그곳으로 정하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배는 고프고 꽤 피곤해서 걸음은 조금 느려졌지만 이곳뿐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걸었다. 그렇게 절반 정도 왔을 때 작은 가게 하나를 발견했다. 동네에서 볼 수 있는 돈가스 집이었고 가게 앞에 메뉴판이 있었다. 반가운 맘에 메뉴판을 보자 가츠동이라는 글자가 있었고 난 오초 정도 고민을 하다 이곳으로 바로 들어갔다. 로컬 맛집만큼 맛있는 곳은 없으니깐, 벌써 몇몇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어, 할머니 한 분 께서 귀여운 앞치마를 매고 계신 것만 봐도 여긴 확실하다! 하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메뉴를 쓱 보고 새우튀김도 먹고 싶었지만 길게 고민하지 않고 바로 맥주와 덮밥을 주문했다. 생맥주가 있다니 완전 럭키다. 주문받으신 할머니께선 바로 마실 건지 물어보셨고 난 오늘 너무 걸었기 때문에 갈증이 심했기에 바로 요청을 했고 생맥주를 지친 몸에 채워 넣었다. 곧 있으니 가츠동이 나왔다. 따뜻하고 조금은 느끼하고 짭조름한 가츠동. 허기지고 지친 속엔 따뜻하고 국물이 있는 음식이 제격이다. 얼마나 먹고 싶었던 가츠동인가…! 아침부터 부지런히 먹었음에도 하루 종일 굶은 사람처럼 음식을 먹었다. 역시 사람은 나트륨을 섭취해야 에너지가 생기는 것 같다. 여기 가츠동엔 당면도 들어있었다. 너무 신기했는데 찜닭을 먹을 때도 당면을 더 많이 먹는 나로선 굉장히 즐거운 조합이었다. 달짝 짭조름한 간장 베이스에 당면이 맛이 없을 리가 없었고 더 든든한 기분도 들었다. 내가 거의 식사를 마쳤을 때 옆 자리에 새로 온 손님이 가츠동을 주문했다. ‘굿 초이스입니다!’를 속으로 외쳤다. 나 홀로 가츠동 메이트를 만들고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를 마쳤다. 먹고 싶은 음식을 낯선 장소에서 작은 도전을 해서 먹었다는 사실이 더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 내가 꿈꾸는 여행에 한 발 더 다가간 기분이었다. 이날은 뭐든 다 성공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작가의 이전글 낯선 공기를 찾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