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가을 교토 #4
돌아가는 날의 이른 아침 작지만 호화스러운 아침을 먹기 위해 나섰다. 숙소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아침부터 문을 여는 베이커리 카페를 오미 가미 보았다. 아침이지만 가게는 빵을 사거나 커피를 마시며 책이나 신문을 읽거나 나와 같이 간단히 식사를 하기 위해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예쁜 빵들도 많았지만 난 오늘 여기서 맛있는 브런치를 먹을 생각이었기에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보았다. 갓 구운 크루아상과 커피세트부터 신선한 야채와 햄이 들어간 샌드위치까지 다양한 브런치 메뉴들이 많았다. 고민을 하다 이번 여행은 계란으로 정한 여행이니 프렌치토스트를 주문했다. 메뉴가 나오기 전까지 가게 안을 둘러봤다. 우리나라엔 이렇게 아침부터 카페를 하는 곳이 흔치 않고 있어도 오전 시간에 카페에서 아침을 먹을 일이 적기에 조금 들떴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도 많은데 이런 서양식 카페에 들어오니 괜히 유럽 여행을 온 듯한 묘한 기분도 들었다. 주변을 구경하며 기다리자 토스트가 나왔다. 통통한 바게트를 잘라 구운 쫄깃하고 촉촉한 프렌치토스트였다. 곁든 크림과 요거트와도 잘 어울려서 순식간에 다 먹어 치웠다. 달달한 음식은 어지간하면 배신을 하지 않는다.
프렌치토스트는 뭔가 대충 굽기는 어려운 메뉴라고 생각한다. 팬을 예열하고 정성스럽게 구워야 한다. 계란물이 너무 많으면 부쳐져 버리고 불이 세면 겉만 익어 버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너무 약하게 구우면 색이 노릇하게 나오지 않아 보기에 먹음직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계란물이 빵 속까지 잘 스며든 빵을 정성스럽고도 과감하게 구우면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프렌치토스트가 된다. 여기에 설탕이든 메이플 시럽이든 원하는 것을 뿌리고 크림이나 아이스크림을 곁들이지만 난 구운 바나나를 얹어 먹는 것을 좋아한다. 바나나를 설탕 뿌린 팬에 구우면 캐러멜 옷을 입은 바나나가 된다. 원래도 단 바나나가 익으면 더 달아져 프렌치토스트와 정말 잘 어울린다.
돌아가는 날은 아침 먹기 외에 다른 일정은 없었다. 괜히 하루를 가득 채우는 일정은 귀국 후가 너무 피곤하고 힘들기 때문에 돌아가는 날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적당히 시간을 때우다 기차를 탔다. 아쉬운 맘에 마지막으로 패밀리마트의 계란 샌드위치를 샀다. 겨자로 예상되는 마요네즈가 들어간 계란말이 샌드위치였다. 첫날 먹었던 세븐일레븐의 것과는 다른 식감과 맛을 자랑하는 샌드위치로 부드럽고 맛있었다. 난 이쪽이 더 취향에 맞으려나,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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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짧았던 일본 여행이 끝이 났었다. 몇 년 전에. 지금도 그 가게들과 그 풍경들이 그대로 있을지는 가기 전까진 알 수가 없어 다시 여행 가는 날을 꿈 꾸고 있다. 나에게 여행이란 새로운 것을 체험하는 것보다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 느긋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는 것이다. 아무래도 환경과 장소가 변해야 생각을 잠시 끊을 수 있으니 말이다. 결국 현실의 일상을 더 잘 살아가기 위한 잠깐의 일탈이다. 비행기 표를 사고 일정을 정하는 설렘을 가득 느끼고, 한국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오롯이 나에게 맞춰 잠시 생활을 해보는, 내가 무엇을 더 좋아하고 원하고 피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알아가는 것이 여행이다. 이때의 여행이 끝나고 조금 더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퇴사를 하고 재 취업을 고민하다 공무원 공부에 잠깐 발을 들이면서 내가 왜 이것을 준비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퇴사를 할 때엔 조금 더 명확한 미래가 있었으나 그 후 주변 환경에 따라 나의 꿈과 결심이 흐지부지해져 버렸다. 남들은 잘만 자기 길을 가는데 나만 뒤처지는 이 기분을 좀처럼 쳐내지 못하고 우울 한 가을을 보내고 있었다. 여행을 다녀와 두 달 정도는 계속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하루에 세 시간을 걷고 집으로 돌아와 취미 그림을 그렸다. 밤새 그리다 잠이 들고일어나 같은 일상을 보냈다. 그러다 점점 나아졌다, 마법처럼. 청소를 하고 베이킹을 시작하고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취업 사이트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여행을 다녀온다고 하루아침에 나의 모든 마음가짐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좀처럼 쉽게 변하지 않는다. 힘들었던 기억은 오래 나의 내면에서 긴 시간 틈틈이 나를 괴롭힌다. 여행 중엔 이 세상이 참 아름답지만 끝나고 돌아왔을 때 여행의 즐거움과 현실의 괴리감에 빠질 때도 있다. 하지만 여행에서 만난 부드러운 바람과 햇살 받으며 걸었던 거리, 외국어가 들려오는 식당과 상점, 낯선 숙소의 이불 냄새 등을 기억하면 답답하던 오늘 나의 마음도 조금씩 나아지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서서히 조금씩 내 마음이 괜찮아졌을 때 다시 힘을 내서 살아갈 용기를 얻는 것 같다. 그래서 난 여행을 좋아한다. 나에게 여행이란, 내가 살아가고 싶은 모양새를 미리 체험하는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