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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gi Aug 03. 2022

여름

계절을 보내는 것 

 하루하루 사는 것이 바빠 오늘은 무슨 달인 지 무슨 계절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때가 많다. 오늘은 7월 여름이다. 그런데 이걸 알고 있으면서 아무런 감각이 없을 때가 가장 우울하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여름이 되면 여름 과일을 먹어야지, 여름휴가는 어디로 갈까, 어서 새로운 팥빙수도 먹고 싶다, 여름이니 능소화를 보러 가야지와 같은 하는 설렘 가득한 계획이 있었다. 여름밤 산책을 할 땐 조금은 선선한 듯 후덥 한 공기를 몸에 얹고 시원한 캔맥주를 따 마시고 냉동실에 넣어 둔 물수건을 목에 둘렀다. 여름의 더위를 실컷 마주하고 이겨내려 했다. 여름은 너무 덥지만 사람의 감각을 깨우고 살아있다는 느낌을 가장 강하게 느낄 수 있는 계절이라 생각한다. 아마 내가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일 것이다.


 올해는 마음과 머리에 다른 일이 가득 차 있어서 계절이 들어 올 틈이 없다고 한다. 최근 저녁을 먹으러 본가를 방문했는데 후식으로 엄마가 내어 온 복숭아를 보고 놀랐다. ‘아, 벌써 복숭아가 나와? 참외는 언제 끝났어, 나 아직 참외 많이 못 먹었는데…’ 과일도 부지런히 먹어야 한다. 그렇게 겨울 내내 기다리던 참외는 먹고 싶었던 마음만큼 다 먹지도 못 했고 살구도, 백도도 난 아직 먹지 못했다. 그렇게 좋아하는 초당 옥수수도 엄마가 챙겨주지 않았으면 그냥 건너뛸 뻔했다. 여러 과일들이 제철이 되어 엄청난 맛을 자랑하지만 나만 아직 여름이 이른 느낌이다. 나 아직 여름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매일을 즐겁게 보내는 것은 소소한 행복이라 생각하는데 그 소소한 행복은 나에게 있어 계절을 제대로 느끼는 것이다. 일 년 매일을 같은 것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제철의 별미는 일 년을 기다리는 작은 행복이지 않은가. 그런데 이 아름다운 여름을 평소의 절반밖에 즐기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괜히 속상하고 우울해졌다.


 먼저 여름 대나무 자리를 꺼냈다. 작년 여름에 구입했는데 생각보다 조금 늦게 꺼내게 되었다. 러그 같은 크기나 부피가 큰 물건을 다루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큰 결심이 필요하다. 바닥 청소를 하고 테이블을 치우고 대나무 자리를 깔았다. 돌돌 말려 있는 러그를 펼치기 전 고양이들이 신나 해서 잠시 놀게 두었다 다시 펼쳤다. 한번 닦고 맨발로 자리를 밟으니 시원한 기운이 발바닥부터 찌릿하게 올라왔다. 방 분위기도 순식간에 여름이 된 듯 시원해 보였다. 왜 이걸 이렇게 미뤘나 싶을 정도였다. 그러고 난 대나무 발을 주문했다. 고양이들이 밖을 잘 볼 수 있게 이중창의 겉 창문을 떼어 버렸는데 여름이 되니 더위가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커튼을 달까 했지만 그래도 여름은 역시 대나무이지 않은가. 대나무발을 설치해 윗부분을 가리면 더위가 좀 가려지길 바라는 맘으로 구입해 달았고 답답한 집이 아닌 바람이 통하는 착각이 드는 집이 되었다. 작은 변화로 이렇게 우리 집과 나의 생활은 여름에 한 발짝 다가갔다.

 여름마다 하는 한 가지는 바로 동그란 모양의 얼음이다. 확실히 여름엔 얼음을 많이 먹게 되는 게 그냥 네모난 얼음은 지겨우니 동그란 얼음을 얼리기 시작했다. 동글하고 매끈한 얼음은 사람의 마음을 깨끗해지게 하는데 효과가 있다. 특히 투명한 색의 액체에 담으면 각진 부분 없이 동그란 얼음이 더 빛나 보인다. 탄산수에 레몬을 띄어 동그란 얼음을 가득 넣어 마실 상상을 하였다.


 장마가 끝나면 곧 한 여름이 된다. 냉면도, 빙수도, 물놀이도 난 아직이다. 어쩌면 올여름엔 늘 만나던 행복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여름은 짧은 한철이고 우리는 너무 바쁜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내가 이번 여름을 보내며 알게 된 건 한숨 돌릴 여유가 나에겐 필요하다는 것이다. 외부로부터의 스트레스로 인해 하루를 견디다시피 살아온 올해가 벌써 절반이 흘렀다. 올해의 절반 동안 생각나는 것은 그저 투두 리스트에 적혀있는 해야 할 일들 일 뿐, 즐거운 일은 일단 미루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모두 계절과 연관이 있다. 봄엔 피아노를 배워 봄의 새벽에 즐겨 듣던 피아노 곡을 연주하고 싶었고, 여름엔 친구와 미루고 미루던 스노클링을 가고 싶었다. 가을엔 아름다운 자연이 가득한 곳으로 여행을 겨울엔 티코스터를 떠 지인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 싶었다. 그렇게 계획을 했지만 봄의 피아노는 지나 버렸고 스노클링은 불분명하며, 앞의 계획 실패로 남은 계획에도 힘이 빠져버렸다. 하루를 즐기기에 여유보다 중요하지만 어려운 것은 없다. 일일시호일이라는 영화와 책을 재밌게 봤을 때가 있었다. 그땐 그 숨겨진 의미가 어려웠다. 매일매일 좋은 날, 그것은 그냥 매일매일 즐겁게 긍정적으로 보내라는 뜻이라는 것만 보였다. 지금 생각하니 머리가 아닌 오감으로 하루를 그 계절은 그 순간을 느끼라는 뜻이 아닐까 한다. 여름 복숭아를 먹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그 복숭아의 달달한 맛을 제대로 느끼는, 먹는 그 순간의 찌릿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여름을 위해 오늘에 집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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