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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gi Aug 04. 2022

우리

친구들

 나에겐 친구들이 있다. 누구나 다 친구들은 있을 것이다. 동성 친구, 이성 친구, 친구 같은 엄마 아빠, 친구 같은 동생. 누구도 소중한 그들을 대신할 수 없고, 나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 되면서 친해졌고 그렇게 15년째 여전히 서로의 친구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 혼자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른 곳으로 다녔는데 계속 연락을 하고 아직까지 친한 것이 신기했는데 아무래도 이 친구들이 나를 놓지 않아서 일거라고 생각한다. 난 약속 전날이나 당일에도 기분에 따라 약속을 취소하기도 하는 ‘걔 좀 왜 그래..?’하는 인간이다. 물론 대학생 때 까진 잡은 약속은 꼬박꼬박 지키려고 하고 시간도 최대한 엄수하였고, 오히려 시간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언짢아하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그런 내가 어느샌가 단단히 잠겨있던 나사를 조금씩 풀면서 시간 개념도 약속 개념도 조금씩 해이해져 갔다. 처음부터 약속을 거절하지 못하고 계속 마음속에 품고 있다가 결국 늦게 취소를 하는 버릇이 생겨 버린 것이다. 그 부분에 꽤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이 친구들은 나의 그런 부분에 화 한 번 내지 않고 이해해 주려고 하였다. 나는 미안해하면서도 나의 감정 변화에 따른 일방적인 약속 취소에도 스트레스받아했고 이러한 부분조차 나를 힘들게 하였다. 난 계속 조금 불안정한 상태였던 것 같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우리의 만남은 꽤 힘들어졌다. 코로나가 퍼지기 직전 다녀온 경주 여행이 아직까지 우리의 마지막 여행으로 남아있다. 거리 두기와 시간제한으로 인해 외식도 힘들어져 우리는 주로 우리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것마저 친구들은 나에게 맞춰주어 가능했던 일이었다. 항상 그렇게 만나다 오랜만에 시간을 맞출 수 있을 듯하여 연락을 했다. 여름휴가가 힘들어졌지만 그 대신 더운 여름에 시원한 맥주 한 잔 하며 수다를 떨자고 이야기했다. 바쁘고 힘든 생활을 하는 우리가 나는 서로 얼굴 보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한 해 한 해 지나갈수록 세월이 흐를수록 일이 바빠, 피곤하고 힘들어서, 돈이 없어서라며 여러 이유들로 친구들과 더 많이 추억을 쌓지 못한 것이 아쉬워진다. 하지만 추억은 꼭 몇 날 며칠을 비워야 하는 것도 아니고 피로회복제를 먹어가며 힘을 내야 하는 것도, 꼭 어디론가 멀리 떠나야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의 마음에 남겨야 하는 것은 친구의 취향과 우리의 대화, 친구의 살아가는 모습 같은 것들이다.


 예전엔 예쁘고 유행하는 음식점이나 카페, 놀이 시설에 가고 싶었고 그런 것을 함께 어울려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자 했다. 하지만 나의 취향은 새롭고 화려하고 멋진 것에서 조금씩 벗어나 소박하고 편안하고 쉬운 것으로 변했다. 그러면서 지속적인 연락을 하거나 만나기 부담스러운 사람들도 생겼다. 그들의 취향에 공감을 해 줄 수 없고 함께 하는 것이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불편하고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친구들과는 전혀 어렵지가 않았고 그것은 여전히 참 신기하다. 보통 10대 때의 친구들과는 옛날이야기를 주로 하게 되는데 이 친구들과는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 온 게 이유인지 우리의 대화는 과거가 아닌 현재에 있고 나의 취향이 변화되는 것도 자연스럽게 알고 있어 숨길 필요도 불편해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중학교 3학년 때 한 반에서 만났다. 어영부영 10대를 보내고 대학생이 되어 이제 술집에 갈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우리는 우리가 술을 먹는구나! 하며 즐겼고 같이 카페에서 대학 리포트를 작성할 때도 우리가 이렇게 리포트를 작성하는 날도 오는구나! 했으며 처음으로 다 함께 해외여행을 갔을 때도 우리가 같이 비행기를 타다니! 하며 감격했다. 송년회를 하며 와인과 스테이크를 먹으며 어색하고도 설레는 기쁨을 느꼈고 실컷 먹고 2차로 떡볶이와 맥주를 먹을 때도 편안하고 그저 즐겁기만 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서로 그저 함께 뭔가를 하는 것이 신선하고 즐거웠으며 계속 바라고 기다렸다.


 나는 꿈에 그리던 자영업을 하면서 매출의 걱정과 생계의 불안, 꽤 많은 스트레스받았다. 그것들은 남몰래 몸 안에 마구 쌓여서 돌덩이처럼 딱딱해질 때쯤 항상 친구들이 찾아왔다. 말을 한 적 없었는데 불쑥 찾아온 친구를 보니 그저 놀랍고 반가웠고 어쩐지 안심이 되었다. 커피 사러 왔어! 하며 쓱 들어와선 이것저것 주문해 주는 친구들을 보며 ‘아, 난 역시 기댈 구석이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냥 안부를 나누고 일상 대화를 잠시 나누었는데 친구의 얼굴과 대화는 내 마음의 짐을 절반을 덜어주고 덕분에 긍정 회로를 돌릴 수 있게 되었다. 가게를 시작하면서도 도움만 받았는데 계속 더 도움만 받고 있다.


 세상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나와 오랜 시간을 보낼 사람은 많지 않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스쳐 지나갈 수 있고 나와 맞지 않은 사람과 긴 시간을 보낼 일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와 오랜 시간 어울려 주는, 나를 있는 그래도 봐주고 나에게 뭔가를 바라지 않고 무엇이든지 함께 하는데 두렵지 않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은 나에게 최고의 행운이다. 내가 30대가 되어도 나로 잘 있을 수 있었던, 힘들어도 주저하지 않고 두 발로 서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변치 않은 친구들이 계속 곁에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저 오래된 친구가 아닌 앞으로도 함께할 친구들이라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지. 앞으로도 잘 부탁해, 사랑하는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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